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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광장에서 열리는 여성대회를 코앞에 둔 지금, 나는 되려 온라인으로 손을 맞잡아준 얼굴 모르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저마다 사연도 이유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자기만의 의제와 함께 모여 드넓은 온라인 공간을 보라색으로 물들였던 순간의 감격이나 조심스럽게 건넨 연대의 인사에 화답해준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드는 반가움 덕분이다. 나의 강렬한 기억 속 3.8 여성의 날은 코로나19였던 2021년과 2022년에 진행했던 <연대의 런데이> 캠페인이었다. 

<연대의 런데이>는 코로나19로 광장에서, 현실에서의 거리가 멀어진 2021년 처음 기획되었다. 익숙한 포맷인 부스 행사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독자적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누구와 만나야 할지, 어떤 그룹과 만날 수 있을지 연대의 의미도 다시 점검해보던 시기였다.

전세계적 감염병의 여파로 가장 높은 실직 위기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불안을 털어내고, 마음껏 누비던 거리며 광장에 접근금지당한 울분을 다른 방식으로나마 풀어내고 싶었다. <연대의 런데이>는 그렇게 시작했다.
 
 2022 <연대의 런데이>에서는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달려가는'상담소의 이어달리기'가 더해졌다.  3월 8일 여성의날 민주노총 5인미만 사업장 차별폐지 액션에 함께하고 있는 상담소 활동가들
2022 <연대의 런데이>에서는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달려가는'상담소의 이어달리기'가 더해졌다. 3월 8일 여성의날 민주노총 5인미만 사업장 차별폐지 액션에 함께하고 있는 상담소 활동가들 ⓒ 한국여성단체연합
 
연대의 런데이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바로 3.8km를 뛰거나 달리는 것이다. 걸으면 50분~1시간 정도, 뛰면 30분 정도 걸린다. 휠체어,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랑 트레킹을 하거나 평소 러닝하던 코스를 뛰다 3.8km 지점에서 멈춰주신 분도 있고, 행진 대열에 합류해 걸어준 분도 있었다. 러닝 앱을 이용해 3.8km 인증샷을 남기고, 자기만의 의제나 보라색 아이템과 함께 인증샷을 남기면 참여 완료!

<연대의 런데이> 캠페인 홍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돌아왔다. 처음 티저 홍보물이 올라왔을때 "이거 재미있겠다!"고 반응해준 사람들, 각종 언론사의 홍보 요청, 본 캠페인이 시작되었을때 SNS를 수놓은 해시태그 물결… 달리기,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여운 짙은 소감과 원래 움직이는 걸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보람찬 후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참해 주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힘찬 시간이었다.

1회차 <연대의 런데이>는 코로나19 2년차를 맞이한 사람들의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고 연결감을 확인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회차 <연대의 런데이>에서는 우리가 연대의 장소로 달려가기로 했다. 1회차 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우리의 해시태그 캠페인에 함께 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혜화역으로 달려가 연대의 힘을 더했다. 변희수 하사 추모제와 민주노총 5인 미만 사업장 투표권 보장 캠페인 등, 비단 폭력 의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운동의 저변을 넓히려 애썼다.

우리의 캠페인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연대가 필요한 현장에 우리가 달려가는 건 또 다른 세상을 여는 경험이었다. 일방향적 발신을 넘어 실재하는 사람들과 만나 서로가 내민 손을 단단히 잡는 것.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동료와 연결되는 감각은 꽤 각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소임이라 자부하는 장관이 여성가족부의 수장이 되었다. 인하대 살인사건,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는 김현숙 장관의 말에 머리가 뜨거워지도록 분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3.8km를 달려준 사람들을 떠올린다. 정성스레 보라색 아이템을 고르고 국경과 거리, 바다를 넘어 함께 달리는 순간 차별과 폭력에 단호히 반대하는 마음들이 연결된다.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우리가 누구와 닿아있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2021년 3월 8일, 함께 캠페인을 준비한 동료가 제1회 연대의런데이 기념 논평에 이런 말을 적었다.
 
...코로나19는 집회하고 행진하기 어려운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광장이 닫혔다고 해서 저항도 멈춘 것은 아니다. 어떤 이름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몸과 공간과 위치를 가진 모든 순간 차별과 폭력과 관계의 불평등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싸우며 다른 이들에게 연대와 안부를 전하는 이들을 만난다. 행진을 멈추지 말자.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나의 의제와 함께 걷고 달리자. 서로에게 릴레이 편지를 쓰는 것처럼 걷자. 매일 지나는 거리에서 불평등의 정치를 걷어차며 달리자.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있는 나의 몸과 움직임과 힘을 느끼자. 싸우는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낡고 부정의한 그들의 정치는 틀렸음을 세상에 보여주자.
 

코로나19, 불공정과 혐오차별의 정치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 어쩌면 와해된 공동체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러나 불리한 환경, 적대감 높아진 환경이 우리가 설치고 말하고 떠드는 모든 말들을 불가능하고 유효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만에 광장에 우리의 판이 열린다. 많은 것이 바뀌고 꼭 3년만의 일이다. 페미 대명절이 열리는 3월 4일, 서울시청의 드넓은 광장에서 환대와 환영의 행진으로 만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홍보팀 활동가입니다.


#3.8여성대회#세계여성의날#한국여성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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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창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대를 이뤄나가는 전국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들의 연합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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