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수많은 언론에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월례비 문제가 오르내린다. 건설 현장의 꽃이라 불리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나름 긍지를 갖고 성실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요즘처럼 후회스러운 때가 없을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악인으로 몰아가는 그들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몹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폭은 물론 대통령이 말한 '건폭'도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때려잡아야 할 적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도 남들처럼 세금을 내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 나라 국민인데, 월례비를 빌미로 정부와 언론이 나쁜 사람으로만 몰아가는 상황 자체가 너무 불공평해 보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남의 주머니에 든 돈 한 푼을 그냥 받기가 쉬운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보일 것이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근무하는 현장에서 '을'의 위치라 원청사 눈치를 봐야 한다.
타워크레인 임대사에 입사 서류를 내고 정식 채용이 되어 건설현장을 찾아가면 원청사 직원이 자기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력서를 들여다보며 다시 면접을 보는 갑질 정도는 예사다. 엄격하게 보호돼야 할 개인 정보를 누군가 당사자 허락도 없이 마구 퍼뜨린 결과다. 당혹감은 잠시뿐, 수개월을 대기하다 겨우 얻은 일자리인데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싶어 맘에도 없는 표정관리까지 해야 할 판이다.
월례비는 위험 부담의 대가
게다가 철콘협회 소속인 단종업체(전문건설업)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야 좁은 인력시장에서 그래도 좀 괜찮은 평을 듣게 된다. 그러자면 휴식도 없이 조출(조기 출근)에 연장근무까지 이어지는 걸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늘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장 관계자는 강한 비바람에 눈보라가 치는 때도 그저 말없이 타워 위로 올라가 일해주길 바란다. 가끔씩 너무 위험해서 작업이 어렵단 하소연을 해도 안 통할 때가 있다.
결국 양보하여 다시 한번 시도를 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지만, 건설업체의 속도전으로 인한 위험 부담은 오로지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몫으로 남는다. 거기에 몇 푼의 성과급이 얹어질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40년 동안 이어온 관행을 불법이라며 뿌리를 뽑으려 한다.
지난 2월, 광주고법 민사1-3부(박정훈 성충용 이수영 고법판사)는 한 건설사가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건설사의 청구를 기각하며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건설사는 6억5400만 원의 월례비를 지급했는데, 이후 이것이 '부당이득'이라며 반환하라고 소송을 건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하청인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건설업자와 정부의 시선으로 월례비를 나쁘게만 바라볼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게 된 원인부터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급여가 너무 적은 탓에 생긴 부작용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은 "건설 업계를 대표하는 뉴욕 부동산위원회에 따르면 뉴욕시의 일부 크레인 운전자와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임금, 초과 근무 수당 및 복리후생으로 연간 50만 달러(약 6억 5825만 원) 이상을 벌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일부의 사례일 수 있고 과거 조사 결과이긴 하나, 대한민국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임금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난다.
조종사들이 땀과 목숨을 담보로 힘들게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면, 월례비란 개념은 저절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월례비란 돈이 건너갔던 것도 건설업체와 타워크레인 조종사 간에 의견 합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거친 건설업체는 공사 기간을 최대한 앞당겨야 수익이 보장된다. 이들이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지급해 온 월례비는 당초 투입될 공사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것은 물론, 험한 일을 더 많이 해결해주는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월례비 문제는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타워크레인 조종사들만 연일 두들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노동환경...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면
또, 국내 건설 경기는 아파트 분양률에 따라 몇 년 주기로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의 공사를 끝내고 나면 일이 없어 최소 6개월에서 1년 반은 집에서 대기하는 고통을 겪는다. 2018년 한국노총에 가입한 어느 조합원은 9개월 근무한 뒤 11개월은 쉬고 다시 3개월 일하다 또 15개월을 허비한 뒤 현재는 타지방으로 가서 근무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면 그곳도 마무리가 되는데 또 얼마나 긴 시간을 수입도 없이 보내야 할지 모른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겐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확보와 낮은 급여를 현실화시키는 과제가 남아 있다. 또 이들은 건설현장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본인의 안전과 생명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동자들이 노조라는 이름으로 뭉쳤을 뿐이다.
최근, '월례비 2억 챙긴 타워크레인 기사'란 제목의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은 월례비 2억이란 제목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극히 일부의 일이며 나머지 99.9% 타워크레인 조종사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월례비는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건설업체가 먼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조출과 연장근무, 무리한 작업을 요구하고 얹어 준 사례금의 성격이 강한 만큼, 이제라도 우리 사회와 건설현장의 인식이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경수씨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