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올해 '이달(7월)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면서 무장항쟁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했던 3의사 가운데 유독 조문기(趙文紀, 1926~2008년, 1990년 애국장) 선생을 배제하자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독립투사 모독'이라고 날을 세웠다.
보훈처는 지난해 12월 '2023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34명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 기념사업회 등으로부터 138명의 인물을 추천받아 근현대사 전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7월의 독립운동가'로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강윤국(1990년 애국장)·유만수(1990년 애국장) 선생을 선정했다.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폭파 의거에 대해 보훈처는 "1945년 7월 24일 경성 부민관에서 친일파 박춘금이 전쟁 수행 찬성을 위해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자 여기에 참석하는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일으킨 폭탄의거"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부민관 폭파의거는 조선총독부의 고관과 아시아 각국의 특급 친일파가 총집결한 대회장에 폭탄을 터뜨려 민족의 독립의지가 끝까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이었다"라며 "독립운동사의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관련자들의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은 오히려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평했다.
문제는 '부민관 폭파 의거' 3의사 가운데 유독 조문기 선생만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과정에서 빠진 것이다. 이를 두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보훈처는 선정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태"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조문기 선생 제외를 문제삼았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실이 보훈처에 질의했고, 윤 의원이 직접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박민식 보훈처장을 상대로 이유를 묻기도 했다.
이에 보훈처는 "1심에서는 강도 범죄로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 해당 혐의는 무죄가 난 것을 확인했지만, 맥아더 포고 2호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 받은 것을 확인해 심사 진입 단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앞서 조문기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2대)을 지내며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8일 낸 보도자료에서 "특정인을 표적 삼아 배제하는 까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며 "혹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2대 이사장을 역임한 사실을 문제 삼았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권한 남용에 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맥아더 포고 2호 위반'을 두고 민족문제연구소는 "조문기 선생의 1948년 5월 5일 단선·단정 반대 북한산 봉화 시위는 통일민족국가 수립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단행한 의거"라면서 "조문기 선생과 거사에 참여한 동지들은 배신자의 밀고로 검거된 뒤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경찰은 봉화 시위를 남로당과 엮어 공산당의 음모로 조작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러나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관 김형대조차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으며, 재판부도 경찰의 남로당 연계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5·10 총선거를 앞두고 있을 무렵 언론은 봉화사건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민중의 열망이 담긴 일상적인 저항운동이었다"라고 부연했다.
보훈처가 '강도 범죄'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독립운동가들이 친일부호를 위협해 군자금을 조달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았지만, 의거에 나선 활동가가 무슨 소매치기도 아니고 거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길가는 행인에게서 푼돈을 강탈하겠는가"라며 "참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조잡한 수준의 조작이었다. 이 혐의 또한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 지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군정 말기 경찰-검찰의 남로당 연계 공안몰이 조작사건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보훈처는 판결문 확인 등 최소한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노상강도' '남로당 연계' 등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라며 "경찰 발표 받아쓰기 한 줄 기사를 근거로 존경받는 애국지사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망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훈처는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불이익을 주고 관련자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를 운용하고 있는지 또는 유사한 지침을 전파했는지 진상을 밝혀라", "심의위원회 회부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은 직무유기이다. 실무선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니 최고 윗선을 공개하라", "최종 책임자를 문책하고 유족 등 관계자와 관련단체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