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학이다. 꽃샘추위가 몇 번은 더 있겠지만 남녘은 벌써 매화는 물론 땅바닥에 바짝 엎드렸던 민들레도 노란 꽃을 활짝 피웠다. 봄이 코앞에 온 듯하다. 이제야 가벼운 마음으로 23년도 새 학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2월 26일, 지난 1년 동안 머리 무겁게 공부했던 '문해교육전문가' 자격증 심사가 있었는데 다음날 드디어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같이 참여한 다섯 명의 동료 후배도 통과했다며 카톡방이 시끄럽다. 긴 시간 마음고생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요즘 문해력이 교육계의 화두다. 학생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문장이나 지문을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은 학습 부진을 겪고 나아가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점점 많아진다는 게 문제다. 초등학생에게 가장 기본이 정확하게 읽고 쓰기는 것이다. 글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내용까지 알아야만 공부를 따라갈 수 있다.
내가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 지는 3년째다. 후배 권유로 한글 지도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문해력향상연구회'라는 모임에 들어가서부터다. 전남 도내 교장(3명), 교감(1명), 수석 교사(4명), 일반 교사(9명) 등 열일곱 명의 회원으로 다들 학교에서 아이 한둘은 지도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교장과 교감 선생님까지도 직접 학생을 가르쳤고, 각기 출발점이 다른 아이의 사례를 발표하며 문제점과 방법을 공유했다. 회원이 되려면 한글 미해득아 한 명씩은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먼저 시작한 다른 회원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어디서도 한글 지도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보통의 아이들은 쉽게 글을 배우지만 느린 학습자는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 빨리 습득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 원인을 찾는 게 한글 지도의 시작이다.
2020년, 1학년 아이를 가르쳤다. 모르는 것은 먼저 시작한 동료에게 묻고 책을 사서 공부해 가며 단모음-자음-자모음 합성-이중모음-대표 받침-복잡한 받침 순으로 차근차근 지도했다. 아이는 집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시기를 놓쳐서였지 1학년 끝날 때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연구회에서는 난독증 전문가를 불러 회원 역량 강화 연수를 계속했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학교에 모여 공부했다.
작년까지 세 명의 아이와 만났다. 아이의 현재 수준을 진단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지도하려면 공부가 더 필요했다. 마침 먼저 시작한 회원 다섯 명이 1년 과정의 '문해교육전문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더니 전원 통과했다는 부러운 소식을 전했다.
1년 동안 가르치며 적용했던 방법에 아이는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매시간 기록하고, 중간에 전문가와 비대면으로 만나 그 방법이 맞는지를 점검한다. 아이의 처음 수준과 공부를 끝냈을 때 얼마만큼의 진전이 있었는지 평가지로 측정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장단기 계획서, 회기 계획서, 진전도 등 가르쳤던 과정을 프레젠테이션으로 심사위원 앞에서 사례 발표하는 것까지 심사한다고 했다.
나와 다섯 명의 선생님도 22년 한국 난독증 협회에서 주관하는 '문해교육전문가' 자격증에 도전했다. 먼저 기본(6시간)과 심화(15시간) 과정을 거쳐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1년 동안 느린 학습자를 가르치며 공부했다.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 틈에서 혼자 뒤처질 수는 없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건 교사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 괜찮은데 시간마다 기록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문가와 줌에서 소그룹으로 만나 경과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그것도 부담인데 또 1년 과정을 평가한다니 머리가 무겁고 지끈거렸다. 큰 짐 하나를 지고 있는 것처럼 어디를 가도 마음 편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도 힘든 시간이 가니 끝이 보였다.
드디어 23년 2월 26일 일요일 오후 2시, 평가 날이다. 전날까지 회원들과 카톡에서 정보도 공유하고 발표 연습도 끝냈다. 아침부터 다른 일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아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세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하면 끝이다. 부르는 사람만 들어오라고 했다. 내 순서는 두 번째다.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는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강의 듣고 시험을 봤다는데 다행히 온라인으로 해 지방 사람에게는 그것도 큰 행운이었다.
그동안 아이를 진단하고 가르쳤던 내용과 얼마만큼 좋아졌는지를 진단지와 그래프로 비교하며 15분 동안 차분하게 발표하고 심사위원 질문에 답했다. 그나마 순서가 빨라서 다행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끝나고 나오니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 속이 후련했다. 그런 힘든 과정이어서인지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으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현직 교사가 '문해교육전문가' 자격증을 딴 사례는 드물다고 하는데 전라남도에만 열한 명이다. 그것도 모두 '전남문해력향상연구회' 소속이다. 우리 연구회는 난독 학생이나 느린 학습자를 가르치는데 도움되는 정보가 있거나 필요한 공부는 무조건 하자는 노력파만 모였다. 이런 현장 교사 전문가들이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두루 쓰였으면 좋겠다.
2월 26일로 길고 긴 '문해 교육 전문가' 자격증 과정을 마무리해서인지 새 학기 맞는 게 여유롭고 마음 편하다. 아직은 사방 어디를 봐도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바람이 한결 부드럽고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곧 봄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자기 몸통만 한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는 1학년 입학생과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난다. 이제부터 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