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처럼 지나가긴 했지만,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대책에 '번개탄 금지'를 포함하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인체 유해성이 높은 번개탄을 금지하고, 유해성이 낮은 번개탄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보도자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보건복지부에도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자살률을 30% 포인트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대책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농촌지역에 농약보관함을 설치하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농촌지역의 자살률이 줄어든 전례가 있을 뿐 아니라, 수년 전 유명 연예인의 자살보도 기사에 번개탄이 도구로 사용된 내용이 포함되면서 번개탄 사용 자살 비율이 늘어난 것도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유해성이 낮은 번개탄으로 대체하거나 그 사용을 통제하는 것도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더욱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그렇다면 실제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정부 주도로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전에 한 가지 소개할 개념이 있습니다. 기업의 생산관리에서 흔히 사용되는 '파레토 도표 기법'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기업의 다른 관리영역과 비영리조직, 정부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죠. 이 기법의 핵심은 제품 불량의 원인은 대체로 3~4가지 요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100개의 제품에서 불량이 발견되었다면, 그 원인의 70% 이상은 3~4가지 요소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그 3~4가지 요소를 확실하게 통제할 수만 있다면 불량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습니다.
자살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거 자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개년에 걸쳐 자살사망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분석한 결과를 2021년에 <전국 자살사망분석 결과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자료는 경찰 수사기록 정보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하였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믿을만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5년간 자살사망자 수는 6만 4124명이었습니다. 1년에 1만 2000명 정도씩 자살로 사망한 것입니다. 인구 10만 명당으로 계산한 자살사망발생률은 강원도가 제일 높았고,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순이었습니다. 농촌지역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살했을까요?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주된 방법은 '목맴'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투신과 가스중독이었습니다. 전체에서 각각 15% 정도씩을 차지했습니다. 그밖에 의미 있는 비율을 보이는 방법은 '농약음독'이었는데, 위에 언급한 것처럼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약물음독, 익사, 상해 등은 각각 3%가 안 되는 비율을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목맴과 투신, 가스중독을 막으면 자살률의 80% 포인트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자살사망자가 발견된 장소를 보면, 자택이 55~60% 정도였고, 공공장소가 26~29% 정도였습니다. 숙박업소와 교외/야산이 또한 각각 4% 정도를 차지했는데, 생각보다 그 비율이 높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이 두 가지 자료를 교차하여 분석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자살사망자의 다수는 자신의 집이나 숙박업소, 교외/야산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거나 아파트나 직장, 학교 등 높은 건물 또는 교각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스중독은 공공장소보다는 자택이나 숙박업소, 차량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겠죠.
이러한 상황을 살펴보면, 번개탄의 유해성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자살률이 급격하게 낮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공장소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택과 숙박업소, 교외/야산 등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나 개입이 거의 불가능한 장소입니다. 즉 자택에서 목을 매거나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미리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투신자가 많은 다리 난간에 자살 생각이 아닌 '살자'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문구를 설치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자살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정부는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번개탄 대체를 대안으로 제시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자살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위 보고서에서 발표한 자살의 주원인은 2017년을 기준으로 정신건강문제(36.3%), 경제문제(20.0%), 신체건강문제(17.5%) 순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가족관계문제가 10.4%, 대인관계문제가 4.6%, 직업문제가 4.1%였습니다. 앞의 세 가지 문제가 자살 원인의 73.5%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원인만 해결해도 자살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입이나 대응 방법을 고안하고자 할 때, 정신건강문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정신질환 중에서 자살사망자 수가 많은 질환은 우울장애, 수면장애, 불안장애 순이었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각각 30.4%, 28.5%, 21.7%를 차지했는데, 이 세 가지 질환은 서로 연결되거나 중복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울과 수면장애, 불안은 개인 수준에서 발생하거나 집단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서 그 원인을 직접 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정신건강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문치료기관과 서비스 제공자들을 확대 배치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환을 겪는 사람의 가족, 친구, 이웃 등은 이 증상들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전문서비스기관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 정신보건간호사,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이 집에서 심각한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를 촉진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 전부터 정신질환 예방과 정신건강 강화를 위한 대중교육을 확대해 왔습니다.
인간다운 생활할 만한 '생활급여' 제공해야
그다음은 경제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요소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득이 적다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빈곤 상태, 사업 실패나 투자 실패, 도박, 중독 등으로 인한 파산과 과다한 채무 등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면서 캄캄한 동굴 속에 갇혀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 때, 그래서 벼랑 끝에 서 있거나 삶이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소는 그 절망의 깊이가 너무 깊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해결책은 매우 단순합니다. 빈곤 문제는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나 최저수준 이상의 생계가 가능하도록 급여를 제공하면 되고, 파산과 채무는 회생제도를 통해 탕감하거나 장기간에 걸쳐 갚아나가도록 하면 됩니다. 매년 개인파산과 회생제도를 신청하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고, 과다한 부채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수십만 명에 달하여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더라도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국가는 마땅히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파산과 회생제도 신청자와 신용불량자가 이렇게 많지만, 실제 경제문제로 자살을 하는 사람은 수천 명 정도이고, 자살사망자가 모두 이 문제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매년 1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숫자가 적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규모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3천 명이 평균 10억 원의 빚 때문에 고통을 받다가 자살을 생각했다면, 아무리 많아도 3조 원 정도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3조 원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큰 금액이지만, 그동안 여러 정부가 이상한 사업에 수십조씩 퍼부어댄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파산한 사람의 빚을 정부가 직접 갚을 필요도 없거니와 모두 한꺼번에 빌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같은 보고서에서 소득수준을 대표하는 건강보험료분위별 자살사망자 수와 발생률을 비교한 것이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가장 가난한 계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급간'의 자살사망발생률(10만 명당 41.3명)이 전체 분위들 중에서 가장 높았고, 전체 인구의 34.1%를 차지하는 상위구간(10만 명당 17.0명)에 비해 2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가난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며, 이들은 장기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만한 수준의 '생활급여'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주요 원인은 신체건강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신체 질병과 장애가 포함되며, 그것들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질병은 정기검진과 조기진단을 확대하여 예방할 수 있고, 장애도 각종 사고나 재난을 예방함으로써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직업병과 안전사고를 줄여도 질병과 장애를 감소시키고, 이를 통해 자살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이것도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작업장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면 되고, 어차피 그 돈도 정부가 직접 다 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것까지 막기는 힘들겠지만, 질병은 치료될 수 있고 사회의 장애는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결론입니다. 정부가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높여주고,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면 됩니다. 질병이나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는 각종 예방대책과 조치를 강화하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질병과 장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도우면서 그것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도록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얘기라 여기서 다루기 어렵지만, 우울과 불안, 수면장애가 직접적으로 자살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울과 불안, 수면장애가 '이대로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증상 자체를 완화하는 치료도 필수적이지만 평소에 자신의 생명이 그럼에도 지켜야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하고, 유명인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베르테르 효과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된 상황과 요소들을 찾아 제거하거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배포한 '자살보도권고기준'에 따라 언론의 자살보도 행태가 달라진 것도 지난 수년간 자살률 감소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최근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유명인의 자살사건 보도에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고 자살과 관련된 사실들을 나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자살'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게 되는 그날, 국민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을 정부나 특정 세력, 기업이 조성하지 않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검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나와 자살을 시도한 사례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벼랑 끝에 내몰려 절망감을 느낀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누군가가 기획한 함정에 빠져 의혹만 무성한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압박을 받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범인은 '검찰'이 되겠죠. 검사는 공무원이고, 검찰은 정부조직이니, 자살을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자살을 부추긴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