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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믿음과는 상관없이 초월적 존재에게 나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할 수 없었던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은 날이 말입니다. 속 시원한 해결책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저 무너지듯 괴로움을 토해내고 훨훨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낯선 동네에 갈 때면 그 동네의 성당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삼십 대 후반에 세례를 받은 늦깎이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가진 성당 건축을 감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성당 입구 성모마리아 동상
성당 입구 성모마리아 동상 ⓒ 김지영

교회건축은 서양건축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요. 중세 교회의 권력이 커지며 번성한 교회 건축이 서양 건축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성당건축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프랑스 초기 고딕양식의 대표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피렌체 성당, 건축가 가우디의 미완의 건축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 시대에 따라 발달한 건축양식이 신앙을 건축에 녹여내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와 합쳐져 위대한 건축물로 남았습니다. 그러한 흔적들은 꼭 세계문화유산 같은 유명 건축이 아니더라도, 동네 근처의 오래된 성당 건축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사 온 동네의 성당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평지가 대부분인 동네 어디에서든 신기하리만치 그 모습이 잘 보입니다. 그것이 마치 종교가 있는 이에게는 항상 함께하는 신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동네 산책길에 성당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언덕 위에 있어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멀지 않은 위치에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르막길이지만, 자연을 잘 활용한 조경과 단정하게 꾸며진 길에 들뜬 기분이 가라앉고 고요해집니다. 언덕을 모두 오르자 성당 마당이면서 동시에 주차장 역할도 하는 넓은 터가 펼쳐집니다.
 
 성당 마당
성당 마당 ⓒ 김지영

유럽의 중세 성당들은 교회 앞 공간을 광장처럼 넓게 확보하고 지었다고 합니다. 예배나 미사 전후 사람들의 입출입으로 붐비는 공간에 여유를 두어 혼잡을 피하고, 만인이 소통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소통과 배려의 공간이 동네 성당의 넓은 마당에서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니 그 끝에 성모 마리아의 동상이 보이고, 성체 성지로 지정된 구 김포성당 건물을 향해 가는 계단이 이어집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갈수록, 시야가 조금씩 위로 확장되며 드러나는 석조 건물의 모습이 신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면 넓게 펼쳐진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는 신에게 가까워지는 느낌이 반대로 내려오면서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는 실감이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구 김포성당
구 김포성당 ⓒ 김지영

묵직한 철문을 밀고 들어서니 예배당과 출입문을 분리하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단차가 있는 나무 바닥을 올라 원목의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정면에 나무 십자가와 길게 이어진 의자들이 보이고 양 옆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부드러운 빛이 예배당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원목을 사용하여 밝고 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십자가 앞에 서니 경건한 마음에 절로 두 손이 모아집니다.
 
 성당 내부 예배당
성당 내부 예배당 ⓒ 김지영

기도하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을 선악의 양면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알려진 김수근 건축가는 양덕성당, 경동교회, 불광동성당 등 여러 교회 건축을 지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은 건축 중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민주 인사들의 고문이 자행된 건물도 있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으로 잘 알려진 건물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은 취조되는 이가 건물 후면 쪽문으로 끌려가 나선형 계단을 타고 곧장 취조실인 5층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었는데, 계단참이 없는 구조가 눈을 가리고 끌려가는 이의 위치감각을 상실시켜 공포감을 극대화했을 것이라 합니다. 취조실의 좁고 긴 창문과 내부의 소음을 차단할 용도로 마감된 타공판 벽은 이 건물의 용도가 설계에 얼마나 치밀하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김명식 건축가는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라는 책에서 선악의 양면성이 투사된 건축으로 김수근 건축가의 '남영동 대공분실'과 장충동 '경동교회'를 예로 듭니다. 

이 두 개의 건축물을 통해 건축가의 내면을 선악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내면에 선악이 공존한다는 것이 시대와 건축을 통해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선명한 악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경우들은 도처에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성선설이나 성악설, 성무선악설로 인간의 내면을 분리하는 것은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쪽으로 마음을 정하든 성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1950년대 석조성당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 외부
1950년대 석조성당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 외부 ⓒ 김지영

예배당을 나와 성당 외부를 천천히 살펴봅니다. 1950년대 지어진 석조 건축은 소나무 숲 사이에 굳은 심지처럼 서 있습니다. 1955년부터 지어진 성당은 1956년 완공 후 추후에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건설 장비가 충분치 않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당시 농민이던 성당 신자들은 곡괭이로 땅을 일구고 돌을 나르며 대부분의 공사를 손으로 직접 했다고 합니다. 농사일이 끝난 저녁 때부터 새벽까지, 신자들이 1년이 넘는 시간을 매진한 끝에 완성된 성당은 40년 넘게 동네 주민들의 미사의 공간이며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성당을 내려오는 길
성당을 내려오는 길 ⓒ 김지영

믿음을 향한 인간의 의지는 위대하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농사일을 하다 중간중간 올려다본 곳엔 성당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성당을 일군 시간들이 그들의 몸 속 구석구석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의 갈림길에서 삶의 신성함을 잃지 않는 도구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성당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길, 공간은 방문자에게 내면을 마주 보게 합니다. 그리고 해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영혼은 빛을 따름으로써 빛을 찾아야 한다. -성 베르나르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깨어있는 영혼으로 산책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뜨인돌), <그림자의 위로>(효형출판), 천주교 굿뉴스 홈페이지,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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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걷기#성당#건축#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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