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우리가 역사를 마주할 때 흔히 접하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를 귀하게 생각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방안이 될 것이다."
안석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장이 책 <경남지역 금속노동자 투쟁 연보>(한내 간)를 펴내면서 한 말이다. 1996년부터 2022년까지 금속노조 경남지부의 투쟁 역사가 연표로 800쪽에 걸쳐 담겨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마산창원을 중심으로 경남지역 금속산업부문 민주노조가 1996~1997년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과 자동차노동조합연맹,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소속으로 나눠져 있었고, 1998년 통합한 금속산업연맹이 설립되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여러 투쟁 상황을 언급한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특히 김영삼정부 때인 1997년 11월에 터진 'IMF 구제금융 사태'에 대해 "한국경제를 뿌리째 뒤흔들면서 공황으로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자본과 국가 권력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본격화됐다"고 했다.
당시 노동현장에 대해 이들은 "노동현장마다 임금 삭감을 비롯해 노동조건이 대폭 후퇴한 것은 물론이고, 매각과 분사,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원-하청 지배구조가 더욱 굳어지면서 정규직은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당시부터 벌어졌던 삼미종합특수강 매각과 대량해고, 창원에 있던 현대자동차 계열 회사들의 분리와 회사명 변경, 옛 한국중공업의 민영화, 대우그룹 산하 대우중공업의 분리·매각 등 사태에 대해 벌어졌던 노동 투쟁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2003년에 있었던 고 배달호 노동열사의 분신,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의 죽음과 관련한 투쟁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했던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2003년 100개 개별기업 사용자들을 강제해 한국 노동 역사상 처음으로 산별중앙교섭을 성사시켰고, '기존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쟁취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당시 중앙교섭에 이어 지부집단교섭을 했던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2004년에 16개 사업장이 참가해 지부집단교섭을 이끌어냈고, '추가 전임 인정과 처우 보장', '교섭위원 활동시간 보장'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자본의 노동착취 자랑 아닌, 노동자의 투쟁 역사 기록"
노동자 정치 투쟁을 벌인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특히 "2004년 4월에 있었던 14대 총선에서 창원성산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고, 당시 민주노동당이 지역구 2석과 비례 8석의 모두 10석을 획득하여 제3당의 지위에 올랐다"고 기억했다.
2007~2008년 사이 한미FTA 협상 반대 투쟁을 벌였던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당시 정갑득 위원장과 허재우 경남지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구속됐는데, 이에 대해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정권과 자본은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강경한 탄압을 했다"고 기록했다.
해외자본 관련한 투쟁도 있었다. 특히 금속노조는 "2008년 일본자본인 한국씨티즌정밀이 일방적으로 매각했고, 우리는 자본 철수를 위한 위장매각으로 규정하고 137일간 투쟁했다"며 "하지만 자본 철수의 불씨를 끄지는 못했다"고 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해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조합의 활동도 크게 축소됐다", "노조는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결의하고 실천하는 조직인데 새로운 상황을 맞아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됐다"면서 "2021년에 300억원이 넘는 조합비가 투입된 금속노조 교육연수원이 개원했다"고 소개했다.
또 책에는 2020~2021년 사이 대우조선지회가 벌인 '대우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으로 매각 반대 투쟁', 한국공작기계 노동자들의 폐업 반대 투쟁, 한국산연지회의 자본 철수 반대 투쟁,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의 복직과 정규직화 투쟁 등에 대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여러 사업장에서 매각, 폐업,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투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등 언론 기사도 참고했다고 한 집필위원 김정호 미래를준비하는노동사회교육원 소장은 "책 발간에 부족하고 아쉬움도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뚜듯한 마음도 작지 않다"며 "연표는 대중적인 역사책이 아니다. 역사 정리의 기초이자 시작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다는 일', 곧 통사든 부문사든 지역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안석태 지부장은 "노동역사 속에는 우리가 항상 승리했던 기록만이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갈등 속에서 분열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의 쓰라린 아픔이 기록되기도 한다"며 "그렇기에 우리가 오늘 만들어내는 역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도 작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기대했다.
그는 "여전히 기득권의 역사는 계속 기록되고 있다. 자본은 자신들의 자본력을 이용해 노동 착취의 역사를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이들은 역사관이라는 건물까지 세워가며 자신들의 역사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랑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투쟁과 모진 탄압 속에서도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기득권의 역사가 옳은 것이 아니다', '저들의 역사는 노동자 착취로 만들어진 역사다'는 것을 증명해 나가는 단계이다. 지금은 한 권의 연표집으로 동지들 앞에 선을 보이지만 동지들이 가지고 계신 역사의 증거와 자료들을 모아내 우리 노동자의 유구한 역사가 전국 곳곳에서 기록되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