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는 정확하면서 아름다운 글, 인간을 탐사하는 단단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비평이라면 딱딱하고 무미건조해야 한다는 편견을 과감히 깨뜨린 작가이다. 평론가가 문단과 대중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기는 쉽지 않은데, 신형철 작가는 예외이다. 독자와의 만남의 자리 또는 SNS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읽는다는 독자들이 많을 정도의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신형철 작가의 대표 저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책 좀 읽는다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의 글은 독자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그의 필력은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형철 평론가의 비평 한마디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작가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인생의 역사>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책에는 5부에 걸쳐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작가가 읽고 겪은 삶의 시들이며, 시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깨닫게 해준다. 모 신문사 인터뷰에서 "비평가로서 꾸준히 훈련하는 일 중에 하나가 시를, 젊은 시인들의 시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고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하고 되새긴다"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69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직장인들, 뚜렷하게 앞이 보이진 않지만 미래의 어느 지점을 향해 계속 달려가야 하는 청년들,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노년의 누군가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삶을 그려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살아있기에, 숨 쉬고 있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신형철 작가에게 시는 삶이고, 삶은 질문을 품고 있는 시어들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87쪽)
그렇다면 신형철 작가에게 문학이란 무엇일까? 신형철 작가가 풀어주는 시의 의미는 새로우면서 따뜻하다. 그가 수없이 책들을 뒤척이며 불태워 터득한 시, 그리고 문학과 삶의 의미는 독자들에게 뜨거운 용기를 선사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희망과 절망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다. 현실의 대부분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냥 무명의 시간인 것이다.(226쪽)"라고 말하며 독자들이 희망과 절망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를 응원한다. 무조건적인 희망가가 아니기에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덜컥'하고 마음의 자물쇠가 풀려 버린다. 신형철 작가의 글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카타르시스다.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이라는 것. 그렇구나. 나를 태우는 불을 끄기 위해 나는 타오르는 책들을 뒤적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 (211쪽)
이 책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한다. '덕질'이라는 용어에 대한 작가의 정의와 해석이 매우 명쾌하면서 흥미롭다. 살면서 누군가는 간혹 아주 드물게, 피할 수 없는 '덕통사고'를 경험하기도 한다. '덕질'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탁월성까지 갖게 한다는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덕질'에는 나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응원하는 누군가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이 세계를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게 된다.
덕질, 즉 한 사람이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고 헌신하는 일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흔히 덕통사고라는 말을 쓰는 것은 우연한 계기로 어떤 대상에 불현듯 마음을 뺏긴다는 뜻이겠지만, (중략) 한 대상에게 불현듯 마음을 뺏기게 되는 드문 사건이 한 사람을 불가역적으로 바꿔놓는다. 나는 이 변화가 긍정적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탁월함을 갖게 하는 변화일 수 있다고 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을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250쪽)
신형철 작가의 글은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빛을 머금은 채 걸러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가 다정하게 몸속에 스며든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데 성공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선순환이 실패할 경우 상황은 반대가 된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타자를 미워할 것이고, 그 타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또한 사랑할 수 없게 된다. (275쪽)"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힘이 있다.
한 문장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치밀함 뒤에 담긴 친절함이 신형철 작가의 글이 주는 매력이다. 수많은 문장 수집가들의 그의 책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연신 환호를 보내는 이유이다. 4년 만에 나온 신작이기에 더욱 귀하다.
신형철 작가가 언급한 박준 시인의 삶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현재를 살고 있지만 늘 미래를 염두에 두고 현재가 미래에게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가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