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6일 윤석열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대법원 판결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를 해법안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작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일본 피고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서는 양국 경제계가 공동 조성하는 '미래청년기금'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시민모임 독립 "분노를 넘어 참담... 윤 정부, 피해자들 요구 외면"
이에 야당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당장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93) 할머니가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역시 '역사 퇴행의 시절, 청산되지 않은 역사와 미국의 책임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시민모임 독립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시민단체다.
시민모임 독립 측은 "분노를 넘어 참담하다"며 윤석열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일본 정부 사죄와 가해 기업 배상이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제강점과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헌법 정신을 부정했다"며 "있을 수 없는 행정부 권한 남용이요, 외교 항복선언"이라고 성토했다.
아울러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와해로 인한 역사 청산 실패 이후 등장한 '역사부정세력'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마침내 윤석열 정권의 배후에서 다시 대통령의 머리와 손을 지배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으로 이들은 "미국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발표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안 발표 직후 미 국무부는 "역사적 발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이에 시민모임 독립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민족의 입장에서, 헌법 정신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행동해 나갈 것"임을 선언하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기 위한 행보를 계속 이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시민모임 독립은 오는 11일 오후 4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강제동원 해법 강행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여해 윤석열 정부를 성토할 예정이다.
한편 시민모임 독립은 지난 1일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지금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과학기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고 선언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서도 "이런 기념사는 역대 3.1절 기념사에서 유례가 없다"고 강력 규탄했었다.
아래는 7일 '시민모임 독립'이 발표한 입장문 전문이다.
[전문]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발표에 대한 시민모임 독립 입장문
역사 퇴행의 시절, 청산되지 않은 역사와 미국의 책임을 생각한다
분노를 넘어 참담하다.
윤석열 정부가 3월 6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설치한 재단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해 강제 징용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제3자 변제가 그 골자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부 사죄와 가해 기업 배상이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제 강점과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헌법 정신을 부정했다. 미쓰비시와 일본제철 등 전범 기업들이 강제동원과 강제노역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2018년 대법원 판결도 무시했다.
강도는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는데, 피해자 치료를 다른 피해자들의 쌈짓돈을 모아 해결하는 식이다. 한국 정부가 나서 일본 전쟁 범죄에 면죄부를 발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일을 벌이는가? 윤석열 정부는 누구의 정부인가? 있을 수 없는 행정부 권한 남용이요, 외교 항복선언이다. 세계만방이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항복선언은 역대 한국 정부의 일본을 향한 사과와 배상 요구를 치기 어린 생떼로 전락시켰다.
외교 항복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2년 3개 안보문서 개정으로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와 행사권을 확보한 일본이다. 이번 발표는 군국주의 팽창과 한반도 재침탈 야욕에 면허증을 발급했다. 동아시아 평화를 지탱하던 기둥 하나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는 3월 6일을 대한민국 외교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노와 참담을 넘어 돌아보고자 한다. 이런 황당한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역주행의 원인은 무엇보다 우리 내부에 있다.
1949년 반민특위 와해로 상징되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다. 개인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았던 친일 반민족 세력은 해방 이후 재빠르게 친미주의자로 변신했다. 반공을 내세우며 자신의 신분을 '애국자'로 세탁했다. 강점기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도 이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며 군림했다.
역사 정의는 저잣거리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독립운동은 골방에 유폐됐다. 이 어둠의 세력을 향한 역사적 징치가 반민특위 이후에 없지 않았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활동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조차 강한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의 과거 세탁 야욕이 역사 왜곡으로 드러난 것은 권위주의 체제가 한발 물러선 87년 체제 이후다. 일제 식민지 범죄를 부정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1948년 건국론이 등장했다. 본격적인 역사 농단의 시작이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후과였다. 이들 역사부정 세력이 이명박 정권 이후 전면에 등장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겪어야 했던 이유다. 이들이 돌아왔다. 이들 역사부정 세력이 윤석열 정권의 배후다. 이들의 교설이 윤석열 대통령의 머리와 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미국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발표에 대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즉각적인 환영 입장을 밝혔다. 과거사를 봉합하고 한일동맹을 구축해 대중국 봉쇄 정책을 견고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도다.
이번 발표가 그런 미국의 의도와 이익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존엄을 내던진 굴욕의 정책이며 삼권분립을 무시하며 민주주의를 짓밟은 폭거이다.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넣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이기도 하다.
미국은 벌써 잊었는가? 반미청정국 대한민국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난 것은 5.18 항쟁을 무력으로 짓밟은 전두환 세력을 미국이 방조한 때부터였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리와 이익에 부합하는 정의가 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가 그것을 실증한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도 우리의 입장에 부합하는 선까지만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번 윤석열 정부 파국 해법의 또 다른 배후로 미국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뒷짐 지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을 그들이지만, 그 후과가 반드시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전의 대한민국과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시민모임 독립은 다시 한번 밝힌다.
미래지향과 선린우호의 한일관계는 한반도 강점이라는 역사범죄에 대한 인식 공유가 전제다. 범죄 행위를 부정하고 오히려 과거를 정당화하는 일본의 준동이 지속되는 한, 단 한 발자국의 관계 개선도 불가능하다.
시민모임 독립은 우리 내부와 일본의 역사부정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들의 경거망동을 방조하는 일체의 세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 동원 피해자와 민족의 입장에서, 헌법정신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행동해 나갈 것이다. 이 나라를 만든 순국선열들의 피와 땀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위해.
2023년 3월 7일 시민모임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