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당시 자유로에서 청소작업을 하던 선배 2명이 연이어 차량사고로 숨졌습니다. 하지만 사망사고 이후에도 3인 1조로 운영되는 작업환경은 여태껏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우리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매번 시속 100㎞ 속도로 화물차들이 달리는 도로 위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16일 경기 고양시청 앞에서 열린 자유로 청소노동자 안전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토로했다. 약 46㎞에 달하는 자유로 구간은 현재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의정부국도관리사무소와 고양시, 파주시 등 세 주체가 각각 나눠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 고양시 구간은 유독 문제가 두드러진다.
고양시만 현재 청소업무를 민간용역업체에 '외주화'하고 있으며 작업자들을 위한 안전매뉴얼 또한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자들을 위한 보호차량도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파주시가 각각 2대씩 운영하는 것과 달리 고양시는 최근까지 고작 1대만 투입해왔을 뿐이었다(지난달부터 고양시는 임시방편으로 노면청소차를 작업 보호차량으로 투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7~2021년) 도로 및 관련 시설 운영업종에서 발생한 연평균 재해율은 1.52%로, 다른 업종(0.56%)에 비해 2.7배나 높다. 실제로 자유로 고양시 구간에서 불과 8년 전 청소노동자 2명이 작업 중 잇달아 차량과 충돌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로 청소작업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업무로 비치고 있고 안전매뉴얼과 보호차량 추가투입 등 현장이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느끼는 안전문제와 이들의 요구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2월 29일 자유로 청소작업 현장에 동행했다.
"항상 생명 위협 느끼는데... 고양시, 안전대책 요구 번번이 외면"
장항IC를 지나 자유로로 진입하자 이내 갓길에 큰 화살 표지판이 붙은 1톤 트럭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화물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는 도로 한켠에 안전모와 청소복을 착용하고 쓰레기를 줍는 작업자들. 행여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광경이었지만 정작 청소노동자들은 익숙한 듯 능숙하게 쓰레기를 주우면서 앞으로 나갔다.
"아침 8시에 간단히 회의하고 8시 반부터 현장에 투입돼요. 청소 차량 1대에 3명 혹은 4명이 한 팀으로 해서 총 3개 팀이 제1자유로 각 구간을 맡아 청소작업을 진행합니다. 주로 갓길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줍거나 도로에 직접 들어가 낙하물들을 치우는 업무가 많은데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파편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동물사체가 널브러져 있으면 연락받고 출동해 처리해요. 차량이 쌩쌩다니는 가운데 맨몸으로 작업해서 다들 목숨을 내걸고 일하고 있다고 봐야죠." -윤재남 제1자유로 청소노동자(40세)
목숨을 내놓고 일한다는 윤씨의 이야기는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그가 입사했던 2015년 10월 제1자유로에서는 불과 열흘 간격으로 청소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연이어 차에 치여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람 모두 사고 당시 홀로 갓길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안전대책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고양시는 청소 현장의 안전 책임을 용역업체에 미뤘고 업체 또한 2년마다 바뀌는 구조로 인해 안전 문제가 등한시되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매달 안전교육을 하긴 하죠. 그런데 안전하게 근무하라는 말뿐이고 실제 안전문제를 보장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추가적인 청소 보호차량 투입 같은 대책은 없어요. 회사에 끈질기게 요구해봐도 무시당하기만 하고 담당 부서에 이야기하면 업체에 떠넘기거나 다음 용역입찰에 반영하겠다는 답변이 전부였죠."
고양시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안전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같은 자유로 구간을 관리하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파주시와 마찬가지로 고양시 또한 작업 현장에 청소 보호차량 1대를 추가적으로 배치해 줄 것, 그리고 고양시가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사고방지를 위한 안전매뉴얼을 제정할 것 등이다. 하지만 시 담당부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각각 예산 문제와 파견법 위반 등을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노면청소차량 배치 임시방편... 예산반영 통해 별도차량 필요
최근 이러한 안전 문제를 다룬 탐사보도 매체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획보도로 고양시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작업환경에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보호 차량 문제가 이슈화되자 시는 기존 작업자들이 타고 다니는 청소차량 1톤 트럭 외에 도로 바닥을 청소하는 노면청소차를 각 1대씩 자유로 청소작업에 추가 배치했다.
결과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총 2대의 차량이 작업 현장을 지키게 됨에 따라 현장에서 느끼는 사고위험은 다소 줄어들게 됐지만 이 또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자유로 청소업무를 맡고 있는 이아무개(65세)씨는 "노면청소차량이 같이 다니면서 안전해지긴 했지만 애초에 서로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노면청소차가 자기 업무를 끝내고 일찍 돌아가면 우리 현장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며 "서울이나 파주처럼 별도의 청소 보호차량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반쪽짜리 대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1자유로 청소업무를 맡고 있는 권아무개(36세)씨 또한 "현재 운영 중인 노면청소차량은 자유로 주행속도에 맞는 충격흡수장치가 부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차량이 부딪힐 경우 큰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또한 청소작업 외에도 민원 발생 시 긴급출동을 하기 위한 기동성이 필수적인데 노면 청소차량과 함께 움직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갓길청소나 낙하물 처리를 위한 도로진입 시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노면청소차량이 아니라 자유로 주행속도에 맞는 완충장치가 부착된 청소 보호차량이 현장에 배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파주시와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모두 작업차량 외에 청소인력을 보호해주는 목적의 별도 차량 1대가 함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매뉴얼 또한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다. 현재 자유로 서울구간을 관할하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국토교통부의 '도로작업구간 안전 매뉴얼'을 따르고 있으며 파주시는 작년 2월 환경부에서 나온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업안전수칙을 마련했다. 하지만 고양시는 아직까지 현장업무에 적용되는 별도의 안전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고양시 차원에서 안전매뉴얼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재남씨는 "설사 용역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안전대책과 매뉴얼을 마련한다고 해도 2년 뒤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면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8년 전 사망사고 당시에도 안전대책이 부랴부랴 마련됐지만 매뉴얼화되지 않았던 탓에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고양시에 안전매뉴얼을 마련하도록 하는 건 곧 자유로 청소업무에 대한 시의 안전대책 책임을 높이고 향후 예산반영까지 나서게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담당 상임위 소속 정민경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시 담당부서를 상대로 안전매뉴얼을 직접 작성할 것을 요구한 결과 처음에는 파견법 위반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으나 논의 끝에 안전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이어 "이를 통해 고양시가 자유로 청소작업 시 안전문제에 대한 책임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면서 청소 보호차량 문제와 관련해 "당장 안전대책을 위해 노면청소차량을 배치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별도의 청소 보호차량이 마련되는 게 맞다고 본다. 추후 예산반영 및 간담회 자리 마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