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해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선생님, 지난 2월 12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기 위해 모였어요. 그런데 문득, 파티란 게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날.
생일을 아주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이.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의 삶을 내가 일부 공유받고, 나의 삶을 그들이 일부 가져가서 우리는 마치 지상에서 영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마음이에요.
나, 태어난 것을 축하받아도 되나요? 그들에게 자꾸 말이 걸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돼요.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저로서는 저의 생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는 마음이었습니다.
참사 이후 이 곳을 떠나간 이들의 생일은 어떻게 지나갔을까. 그들의 생일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슬픔이 또 자리잡고 들어갔으려나.
생일 축하해, 라는 친구들의 연락에 고마워, 라고 말하기보다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내 생일 파티를 하자, 이태원에서'
선생님, 저는 요즘 어떤 날은 완전히 참사가 없었던 것처럼 깔끔히 잊고 지내다가 또 어떤 날은 선명하게 기억이 살아나는 그런 날들의 반복입니다.
평범을 되찾았고, 그 속에서 웃음과 행복도 찾았지요. 쇼핑을 가고, 편하게 침대에서 잠도 자고, 맛집을 찾아가고, 여행 계획도 세우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생일 맞이 쇼핑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았어. 신난다, 편하다' 하고 느꼈던 찰나, 이런 안락함이 순간적으로 죄의식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생일 파티에 떠나간 그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 이태원 가서 밥 먹지 않을래, 하고 제안했습니다. 착하고 마음이 고운 친구들은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저는 제가 간직한 특별한 기억과 마음을 존재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친구들과 다같이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유명하다는 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맥주도 한잔 했고 아주 맛있는 디저트도 먹었습니다.
사람이 한참 많을 토요일 낮, 점심인데 아직도 세계음식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 끊겨 있었습니다. 세계음식거리는 당시 'I love Itaewon'(아이 러브 이태원) 행사를 하던 기간이었어요. 'I love Itaewon'이 이렇게 애쓰는 문장으로 읽힐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음식거리에 도착해, 그날의 내가 있었던 곳을 다시 그대로 걸어봤습니다.
'나는 그날 여기까지 왔었지. 여기서 운좋게 누군가 밀어줘서 벽으로 붙었었지.'
'돌아나오면서 술집 사장님이 이 문을 열어주셔서 내가 대피할 수 있었지.'
'정말 한 발자국만 더 갔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삶의 죽음이 이렇게 한 발자국으로 나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 좁은 거리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다 쓰러져있었던 걸까. 그들은 어떻게 차갑게 식어갔나. 누군가의 마지막을 한 명 한 명 보고싶은 마음과, 그날의 상황을 1초 단위로 하나하나 다 맞춰보고 싶은 마음.
그 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으며 모든 것을 곱씹어 봤습니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공청회 때 뵈었던, 이태원 상인 분의 가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사장님을 만나 뵙진 못했습니다. 아래의 마음을 추려, 쪽지만 한 장 남겨두고 왔습니다.
'밀라노 가게 사장님, 저예요.
공청회 때 이태원 가게 되면 꼭 들른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오늘은 안 나오셨네요.
요즘 공황은 좀 나아지셨는지, 소화는 잘 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무슨 일 있는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또 올게요.'
우리의 생일 파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날 그 현장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그리운 존재들.
상실의 아픔을 연대하면서 치유하려고 노력했던 생일 파티였습니다. 슬픔을 대하는 자세와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확실한 건 이미 벌어진 아픔을 품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런 의미로 나의 생일 파티에 글로 연결된 모든 사람을 초대합니다. 머나먼 자리에서, 머나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거라고, 깊은 슬픔도, 깊은 공감도 필요 없다고. 각자의 삶의 모퉁이에서 살짝 보는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길,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지나간 제 생일과, 떠나간 이들의 생일과, 남아 있는 모두의 생일 파티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