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100년이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묵살하고 침묵해 온 참상을 40년간 추적한 재일교포2세 오충공 감독이 새 다큐멘터리 제작 사실을 알리며 그간 품고 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단법인 저스피스 등이 주최한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8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난 오충공 감독은 "관동대학살은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비극을 넘어 한국의 역사기도 하다"라며 "한국정부와 한국 시민들이 이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드러냈다.
대학살 진실 알리기 위한 외길 인생
오 감독은 25세에 일본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교장으로 있던 일본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1983년 27세 나이로 <감춰진 손톱 자국 - 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3년 뒤 <불하된 조선인 – 관동대진재와 나라시노수용소>를 제작하며 관동대지진 전문 감독으로 입지를 쌓아갔다.
이후 40년 간 그는 일본 정부가 은폐하고 있는 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료 수집은 물론이고, 일본과 한국에 사는 희생자 유가족을 수소문해 만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특히 지난 10년간 세 번째 영화 < 1923 제노사이드, 100년의 침묵, 역사부정 >(가제)이라는 작품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10년 동안 한국에 살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 14명을 만났다. 주로 영남 지방에 살고 계시는데 올해 관동대지진 학살 100주년을 맞아 일본으로 모시려 한다. 제 영화가 일본 입장에선 보기 어려운 영화라 극장에서 상영은 못했지만, 학교 강당이나 회관 교회 등을 빌려 상영하곤 했다. 첫 번째 영화는 벌써 2000번 정도 상영한 것 같더라. 83년 발표 당시 첫해에만 50번을 상영했다. 그때 그 영화를 본 초등학교 3, 4학년 학생들이 지금 50대가 됐다. 그들이 보내준 감상문이 제 보물 1호기도 하다."
오 감독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관동대지진을 바라보는 일본의 자세가 나아졌는지 혹은 퇴보했는지 되물으며 새 영화를 작업했다고 한다. 나아진 것은 없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약 1만 5천 명이 일본 전역에서 희생됐다. 그는 관동대지진 학살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강덕상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에선 일부 나쁜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인 것처럼 받아들이는데 이건 국가 차원에서 자행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일본 내에서 관동대지진 3대 학살로 분류하는 사건이 있다. 조선인 학살, 중국인 학살, 그리고 무정부주의자 학살이다. 강덕상 선생은 절대로 이 사건들을 같은 차원으로 병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중국인 학살은 특정 지역에서 노동자들끼라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조선인 학살은 여러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민중학살이며 경찰과 군대까지 개입한 권력형 학살, 그리고 민족학살이었다."
이어 오 감독은 한국 정부에서마저 해방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해 국가적 진상 규명 요구나 사과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며, 반평생 관련 영화를 만들어 온 이유를 밝혔다.
"중국사람 650명이 희생당한 일에 중국 정부에선 바로 진상조사를 했고, 그 명부를 작성했다. 하지만 조선인 1만 5천 명 학살에 대해선 어떤 자료도 일본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당시 사진과 일본 정부에서 작성한 문서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1923년 11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에 항의공문을 보낸 뒤로 100년이 지났다.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시 일본은 숨어 있는 조선인들까지 색출해서 수용소에 보냈다. 그 숫자가 3500명인데, 학살이 아닌 보호를 위함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무참히 죽였지. 분명 명부가 있을 텐데 3500명이라는 사람을 가둬놓고 자료가 없다고 한다.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조사를 촉구하는 규탄대회를 열었고, 해방 이후로 지금까지 희생자 추모회를 하는데 조직적으로 일본 정부가 방해하고 개입하려 하고 있다."
"진실 잘 알리기 위해 분별력 키워야"
지난해엔 일본 국회 회관에서 오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인 <감춰진 손톱자국> 상영회가 있었다고 한다. 입헌민주당 소속 의원 등 해당 영화를 본 인원 중 일부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사실을 역사에 묻히게 하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첫 번째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 증언자들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당시 일본인 청년 스태프들이 있었고 저와 영화 방향성에 의견차가 있었다. 증언자를 어렵게 찾았는데 만나주지도 않더라. 그래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게이트볼도 같이 치고, 인생 이야기도 듣고 그랬다. 시간이 지나서 그분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다. 80대인 그분들은 처음엔 '(관동대지진 학살을) 보았다'거나 '들었다'고만 했다. 그러다가 (가해 사실을) 말했다. 개인적으로 전 그분들이 유언처럼 생각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고 생각한다.
그 증언 이후로 저와 일본인 청년은 하나가 됐다. 일본 속담에 '뜨거운 차를 마시면 뜨겁다고 말하면서도 나중엔 잊어버린다'라는 게 있다. 역사를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더라. 증언자 할아버지들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제 영화는 일본을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담는 영화다."
관련해서 그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역사수정주의를 짚었다. 오 감독은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도 그렇고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역사수정주의가 득세했는데 이젠 아예 역사 부정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독일이 유대인 학살 사실을 놓고 반독이라고 한 적 있는가. 일본에선 역사를 제대로 알자는 주장을 반일로 규정한다. 비극적인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오충공 감독은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아직 세 편밖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했으나 돌아가신 강덕상 선생을 비롯해 일본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을 떠올리며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또한 언론에게도 "공식 문서나 사진 등 이미 나온 것들이 있는 만큼 자료를 잘 검증하고 분별해서 보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편 지학순정의평화상은 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서 싸운 지학순(1921~1993) 주교를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매년 평화 및 인권 문제에 힘쓴 단체나 활동가에게 상을 수여한다. 시상식은 오는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