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천재 주인공이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저런 기발함과 창의력은 극소수의 천재의 전유물이려니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은유란 무엇인가>는 누구나 은유 훈련을 통해서 설득력과 창의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누구나 아인슈타인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남보다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상대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니 얼핏 저자의 객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저자 김용규 선생은 독일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다수의 저작을 발표한 철학자이며 또 다른 저자 김유림 선생은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말하기/글쓰기 전문가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로 대표되는 은유가 당신의 말과 글의 표현력과 설득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두고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 칸트도 '재기 넘치게 시 짓기를 배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과연 이 두 사람의 말대로 우리는 은유는 학습될 수 없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책 <은유란 무엇인가>는 과거에는 맞지만, 현재는 틀린다고 주장한다. 은유를 창조하는 과정이 인지과학의 발달 덕택에 서서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유는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당시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사다리 치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뽑아주는 은유적 사고 방식을 개발하는 실용적인 훈련 방법 즉 '은유 패턴'을 활용한다면 누구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자기 분야의 고수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유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는가? 우선 반복이다. 학습이 일어나려면 우리 뇌에서 새로운 뇌 신경 막이 만들어져 강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반복을 통해 이뤄진다. 피아니스트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대부분의 연습 시간에 기본 동작과 테크닉을 무수히 반복하는 이유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적당한 간격으로 반복 학습하는 것이 장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
다음은 이해다. 연주가들이 코치와 함께 다른 연주가의 연주를 듣거나 운동선수들이 코치들과 함께 경기 영상을 보며 분석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자각을 얻기 위해서다. 강의실 내에서는 천재였던 MIT 학생이 강의실 밖에서는 간단한 자연현상마저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습만 했지 이해를 하는 데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실용이다. 학습에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정도로'라는 전제다. 실용적이지 못한 교육은 분명히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강조한 이해는 '실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반복과 이해 그리고 실용이 서로 순환하면서 되풀이될 때 마침내 가장 뛰어난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유란 무엇인가>가 제시하는 은유적 사고 방식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법을 익힌다면 분명히 '학습에도 왕도는 있다'라는 명제를 믿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