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리가) 먼저 한일 관계 회복 조치를 취하되,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겁니다. 미래의 일은 모릅니다. 그런 열린 결말이라면, (정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국내적 조치에 대한 피해자들의 선택권은 더더욱 크게, 온전히 존중돼야 합니다. 정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안을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입장이든 피해자들은 자유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일본제철·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세은 변호사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검증한다' 긴급 토론회에서 한국 정부 스스로 내린 일제 강제동원 배상안의 한국 기업 자금 출연을 통한 '제3자 변제안'을 언급하며 그 내용이 무엇이든 피해자들에게 정부안만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강요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함께 우리나라 대법원으로부터 일제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확정 받아낸 법률가부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전범기업과 직접 협상에 나섰던 시민단체 전문가와 강제동원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오랜 기간 분석해 온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한일 시민단체들의 연대로 진행된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협상 과정을 공개했다.
이 이사장이 이날 공개한 2011년 12월 26일 미쓰비시 측의 수정안 문건에 따르면 "공장에서의 노동과 생활에 대해서는 그들의 연령, 그 연령에 비해 가혹한 노동이었다는 점, 빈약한 식사, 외출과 편지의 제한 및 검열, 급여 미지불 등의 사정이 인정 된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미쓰비시 중공업은 전쟁 중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여자 근로정신대원들이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힘든 고생을 하신 데 대해 진으로 유감의 뜻을 표한다"라고도 나와 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 상처 덧내는데, 일본이 뭐가 급하겠나"
이국언 이사장은 "조그마한 시민단체도 미쓰비시를 상대로 사죄문 초안까지 받아내고 돈까지 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일본과 어떤 협상을 했는가. 대체 뭘 한 건가. 일본에 놀러 간 건가. 참아주러 간 건가. 시민단체도 이런 일을 하는데 왜 대한민국 외교부가 못 하나"라고 질타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 또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피해자 측도 요구했던 '강제동원' '강제연행' 문구가 없다는 등의 사정으로 당시 합의가 이뤄지지는 못했다"면서 "민간 차원에서의 협상으로 이 정도의 문서를 끌어냈다"고 했다.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 인정과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 사죄, 미지불 임금 및 위자료 등 금전 지불, 근로정신대 사건의 역사적 기록을 명기를 위한 기념비 건립 등이 그것이다.
이 이사장은 당시 10여 년 전 협상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반대했던 '장학 기금'안이 10년 후 윤석열 정부의 해법안으로 나온 데 대해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10년 전 상에 올렸다가 치워버린 쉰 나물을 다시 상에 올린 것"이라면서 "일본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 정부가) 만만해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덧내고 있는데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가 무엇이 다급하겠나"라고 짚었다.
이 이사장은 "(강제동원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결을) 방해하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지 않는다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된 전범기업들의 배상) 특별 현금화 명령은 진즉에 끝났다"라고 말했다.
"강제동원 정부안 국민투표 붙여야"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핵심은 '불법강점'이다> 등의 책을 펴냈던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정부안의 명분으로 '고령의 피해자들을 위한 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고령의 피해자를 위한다면서 정부는 '계류 소송의 경우에도 원고 승소 확정 시 판결금 등 지급 예정이라고 한다"면서 "피해자들에게 대법원 승소 판결까지 받아오면 일본 기업 대신 우리가 돈을 준다는 건데, 이게 정부 해법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령의 피해자들을 위한다면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가 아니라, 패소한 피해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고령의 피해자들을 위한다면,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되었으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21만여 명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일본 전범 기업의 직접 배상을 촉구하는 국회의원 모임' 대표 의원인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의 간사인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비롯해 김홍걸 의원(무소속)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했다.
강 의원은 "일본의 폭정을 경험한 국민이 수백만 생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시적 위임 권력이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면서 "강제동원 정부안에 대한 국민 투표를 제안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국회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