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17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일본은 벌써 흥분 상태다. 한국 정부에서 대폭 양보한 강제 동원 해법이 나오면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올랐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이 하락했다. 일본은 환호, 한국은 실망하는 형국이다.
후보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는 오부치 총리가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젊은 세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견해를 함께 하고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정부의 3자 변제 배상은 개인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밝힌 2018년 대법원판결에 어긋날뿐더러, 기시다 총리는 직접 사과 없이 과거 선언의 계승 입장만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일본 하야시 외무상은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어떤 것도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강제 동원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게다가 2018년 대법원판결의 당사자인 일본 기업들은 배상은 물론 단 한 번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계승한단 말인가?
국내 유일의 일본식 절, 동국사에 있는 '참회와 사죄의 글'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떠나기 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글이 있다.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에 2012년 일본 조동종이 세운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다. 일본 최대 불교 종파의 하나인 조동종은 1992년 일제 강점기에 자행했던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글을 발표한 후, 20년 뒤인 2012년에 이 참사문의 일부를 발췌해 군산 동국사에 최고급 황등석으로 비석을 세웠다.
참사문은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 조동종은"으로 시작하는 참사문은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일본 침략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기자 해설)를 내세워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였으며 일본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일본 문화를 강요하여 민족적 자긍심과 존엄성을 훼손"했고, "아시아 민족 침략의 전쟁에 대해 성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자백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라고 참회하고,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라고 맹세하고 있다.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은 결코 3자 화법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발하고 있으며, 자신의 만행이 구체적 대상, 즉 아시아인, 한국인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빼앗았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자신들은 종교인이지만, 이것이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거부한다면" 신앙까지도 거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상이나 신앙을 초월해 훨씬 엄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냉혹하고 처절한 참회와 사죄의 글은 요즘 같은 시대에 외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토대로 삼겠다고 주장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에 기초해 "역사인식을 심화"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고자 한다. 만일 일본 정부가 그동안 조동종 참사문 만큼의 입장이라도 표명했다면, 더 이상의 사죄 요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약속처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입장을 같이 한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통렬한 참회와 사죄여야 한다. 3·1절에 일장기를 흔든다고, 소녀상 앞에서 철거 시위를 한다고, 유관순 사진을 보고 절도범이라고 한다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참사문은 일본어로도 볼 수 있으니 기시다 총리와 약속한 오므라이스 만찬에서라도 함께 읽어보라. 일본으로 가기 전 동국사에 들려 참사문비를 볼 시간이 없을 테니, 여기 전문을 싣는다. 참사문비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 포교라는 미명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또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였으며 일본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일본 문화를 강요하여 민족적 자긍심과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해 왔다. 게다가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나는 이런 행동들을 석가모니 세존과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을 빌어 행해 왔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거 해외포교의 역사 속에서 범했던 중대한 과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시아인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여 참회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해외포교에 종사했던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일본의 해외 침략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것을 정당화했던 종문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중략)
생각해 보건대 불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불자로서 평등해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훼손되어서는 안 될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 말한다. 그런데도 석가모니 세존의 법맥 잇는 것을 신상의 목표로 삼는 우리 종문은 여러 아시아 민족 침략의 전쟁에 대해 성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때,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귀속할 곳을 찾기 마련이다. 가족, 언어, 민족, 국가, 국토, 문화, 신앙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장받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안식을 얻는다. 정체성 보존은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황민화 정책은 한민족의 국가와 언어를 빼앗았으며 창씨개명이라 칭하여 민족문화에 기반을 둔 개인의 이름까지도 빼앗아 버렸다.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그러한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중국 등지에서는 종문이 침략 하에 놓인 민중에 대한 선무공작을 담당했으며 그중에는 자진해서 특무기관에 접촉, 첩보 활동을 행한 승려조차 있었다.
불법을 국가 정책이라는 세속적 법률에 예속시키고, 나아가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두 가지 잘못을 함께 범한 것이다.
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침범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든 민족이든 마찬가지이다. (중략)
설령 제아무리 아름다운 장식을 하더라도 또 제아무리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해 나타나더라도 어떤 하나의 사상 혹은 신앙이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상과 신앙을 거부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상이나 신앙을 초월해 훨씬 엄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맹세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그리고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깊이 사죄하면서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 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1992년 11월 20일
조동종 종무총장 大竹明彦
한글번역 : 국립군산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표세만
동국사의 개산 기념일에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된 참사문(발췌)을 조각한 비석을 동국사의 정원에 세우고 제막실을 봉행한다.
불기 2556(서기 2012)년 9월 28일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