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움직이는 것에 비해 자동차로 움직이면 속도와 거리가 비약적으로 달라지듯 개인의 이동 역량을 연장하는 것에서부터 산업, 물류, 관광 등 이동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몸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움직이다 부딪치거나 피로가 쌓이거나 하지만, 자동차 운전자가 아니라면 이동 중에 잘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탈 때는 바퀴 상태가 어떤지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 이동의 위기는 바로 동력 기관과 당신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과 함께 시작되었다. 근육과 동력 기관은 전달받은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꾼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마음과의 연결 방식이 다르다. 근육을 쓰면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동력 기관이 얼마나 빠르고 오래 움직이든 당신 마음과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동차와 도로는 한없이 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던 시절부터 승객이든 물류든 수송은 철도로, 이후의 지선 수송은 도로로 이루어지던 '주철종도' 시대는 갔다. 자동차 지배 시대가 온 것이다.
광역도시가 자동차가 지배하는 공간들로 연결되면, 역사적 중심지와 그 속의 삶의 방식은 점점 버려지고, 어쩔 수 없이 공공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이용객은 무력해진다. 스스로 통제하기는커녕 압살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의 빽빽한 통근 지하철이나 미어터질 것 같은 만원 버스를 타면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설혹 자가용을 몰고 가더라도 꽉 막힌 도로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공간 납치범
도시는 과소 장소도 과밀 장소도 아닌 적정 수준의 밀도 속에서 가장 적절하게 번창한다.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있고, 블록의 길이가 가능한 한 짧아서 행인들이 쉽게 방향을 바꾸어 거리를 유연하게 활용하며, 가게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건축물의 연식 등 건물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다양하게 있어야 하고, 이 모든 조건의 전제 조건으로 활동 인구 밀도가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도시의 걷기 공간을 납치한 것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다. 걷기 공간을 자동차 지배 공간 속으로 납치해온 행위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자동차는 공간을 납치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이제는 전기차, 자율주행, 자동차 공유, 개도국의 자동차 증가 등이 한데 묶여 2차 자동차화 또는 제2차 자동차 지배가 다가왔다.
물론 2차 자동차 지배에 한계도 있다. 내연차가 사라지는 것은 폐차율을 감안하면 2050년 되어야 하는 전기차 시대의 이행 속도, 자율주행차를 주차장에 두지 않고 다시 태우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도로 수요를 늘려 역사 중심지와 고밀도 시가지 공간을 녹이고 점령하는 기존과 다르게 이루어질 걷기 공간의 납치, SUV 큰 차량 선호와 싼 전기 에너지 등 에너지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 전기차에 필요한 태양광 발전소 등 재생 에너지를 위한 토지 확보 문제, 전력망 문제 때문이다.
대안은 깍지 모형
저자는 펼친 손가락처럼 생긴 코펜하겐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발전한 도시가 손바닥에 해당하고 주변 도시가 펼쳐진 손가락처럼 발전한다. 펼쳐진 손가락 사이는 녹지가 들어서서 도시와 녹지공간이 두 손이 깍지를 낀 모양이다. 바로 이 깍지 모형을 만든 교통과 도시가 대안의 하나다.
사람들을 바꿀 힘은 사회적 압력,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물의 배치, 그리고 개인의 마음이다. 도시의 미래, 에너지 체계와 탄소 누적, 노년기나 미래 세대의 상황과 같은 것은 이들 힘에 비해 사람들에게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멀리 있다. 이동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간극을 넘어야 한다.
아무리 강인해 보여도, 자신의 활동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나서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이것이 자기 가치감이다. 기후 문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기 가치감을 높이는 이동을 위해 자동차 지배 공간을 줄이고 확장된 보행 공간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대멸종과 생태계 빈곤화를 늦추는 일에 자신이 느끼는 자기 가치감만큼 실천할 수 있다.
적정교통, 적정도시, 적정사회
성장은 결국 교통과 이동 역량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교통보다 균형이 있어야 하는 곳은 없다. 균형을 잃으면 차량은 전복되고, 선박은 침몰한다. 속도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다. 이동은 동력 기관의 추력, 길과 공기의 마찰력, 중력 사이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조정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다. 성장의 속도감 속에서 어떻게 균형감을 찾을 것인가? 속도감 대 균형감의 문제다. 이 균형이 바로 적정교통, 적정도시, 적정사회를 위한 길이다.
우리는 지구에 빚을 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에 배출되어 대기에 쌓인 탄소 전체가 우리가 생태계에 진 탄소 부채다. 철도를 활용하면 같은 거리를 갈 때 탄소 배출량은 승용차에 비해 5분의 1 또는 그 이하이고, 에너지 소비량은 10분의 1이다. 일부러 시설에 찾아가야 만나는 러닝머신보다 매일 마주하는 철도역 계단이 더 좋은 운동기구다. 기후위기를 부른 탄소 부채를 몸속의 지방에, 기상 이변이나 해수면 상승과 같은 사태는 대사성 질환과 그로 인한 합병증에 비유하면, 계단 오르기나 걷기 운동이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길은 억울한 죽음을 부르는 공간이다. 지난 30년간 약 30만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호상이 아니라 횡사를 부른다. 교통사고는 젊은 나이일수록 중요한 사망 원인이었다. 1992~2021년 사이 죽은 0~29세 사람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운수사고로 죽었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수명을 다하고 죽는 호상이 아니라 더 많은 횡사로 내몰 것이다.
철도 사랑을 느낄 만큼 철도교통을 연구해온 이전 저자의 책에 비하면 작고 얇고 예쁘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저자는 기후 변화 시대에 철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보여준다. 그 핵심 소재가 교통 기계다. 저자는 교통 기계 중 지배적인 자동차에 납치된 공간을 되찾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그 중심에 철도가 있다. 철도를 넘어 도시의 재구성에 이른다. 어떻게 이동하는가에 따라 지구별 생태계는 달라진다. 매일 이동하는 우리에게 그가 묻는다. 당신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건준 아유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 4월호 '책 만나기' 꼭지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