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프지 않은데 척추병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허리 또는 목이 아파서 내원합니다.
갑자기 삐끗해 극심한 통증으로 걸음조차 걷지 못해 오는 분들부터 오랫동안 허리가 아팠지만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오는 분들까지 다양합니다.
대부분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다 보니 통증이 사라지면 다 나은 것으로 착각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통증만 없으면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디스크의 터진 정도와 통증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디스크 탈출 정도가 크더라도 통증이 없을 수 있고, 그렇게 많이 터지지 않았는데 통증이 심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알려면 디스크가 터져 통증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디스크는 수분이 많아 말랑말랑한 수핵과 이를 감싸고 있는 질기면서도 탄력 있는 섬유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핵은 계란 노른자처럼 디스크 가운데 얌전하게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수핵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섬유륜을 밀고 삐져나와 신경을 누르면 통증이 발생합니다. 상태가 더 나빠져 아예 디스크가 터져 수핵이 흘러나올 수도 있습니다.
디스크가 터지지 않고 수핵이 삐져나오기만 해도 문제인데, 아예 터져 흘러나오면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흘러나온 수핵이 척추신경을 누르면 그 자체로도 통증이 생기며, 압박된 척추신경이 붓고 염증이 생기면 통증은 더 극심해집니다.
그러나 디스크가 터졌어도 꼭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디스크가 어느 쪽 방향으로 터졌는가에 따라 통증이 없을 수 있고, 나타나는 양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수핵이 가운데로 튀어나오면 신경이 피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많아 다리 부분의 신경을 지배하는 가지신경을 덜 압박해 환자는 주로 허리 통증만 호소하게 됩니다. 반면 수핵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돌출돼 좁은 공간에서 가지신경을 압박하면 허리보다 다리가 더 아플 수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허리디스크라고 하는데, 허리는 별로 아프지 않고 다리만 아픈 게 이상하다고 호소합니다. 이는 수핵이 터진 방향이 다리로 가는 가지신경 골목을 정확하게 눌렀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허리를 뒤로 젖히는 것보다 구부리는 경우가 휠씬 많아 등쪽 디스크에 부하가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끔 앞으로 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배쪽으로 신경이 지나가지 않기 때문에 디스크가 터져도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디스크가 터졌어도 흘러나온 수핵의 양이 많지 않으면 통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디스크 주변 공간은 생각보다 넓어서 디스크가 터진다고 바로 척추신경을 누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터진 정도가 약한데도 통증이 있다면 그건 섬유륜이 찢어지면서 생긴 염증으로 인한 것입니다. 또한 수핵이 신경을 누르지 않더라도 흘러나오면서 신경을 화학적으로 자극해 통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통증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고, 통증과 디스크의 심각성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통증이 없다고 안심하거나 치료를 받다가도 통증이 사라졌다고 다 나은 것으로 착각해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증이 없어져도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허리디스크는 계속 진행됩니다. 약해진 섬유륜을 뚫고 더 많은 수핵이 흘러나오고, 신경을 더 많이 누르면서 통증이 재발하는 것입니다.
반짝 다시 통증치료만 하고 통증이 사라지면 멈추기를 반복하는 동안 디스크는 점점 더 악화돼 결국 초기 통증과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통증만 쫓아서는 안 됩니다. 통증의 정도에 따라 치료를 하고 하지 않고를 결정하지 말고 디스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준하는 치료를 해야 재발과 악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수원자생한방병원 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