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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감사일기 노트입니다.
감사일기감사일기 노트입니다. ⓒ 박여울

2023년 1월 15일 일요일은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휴일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저는 심심해서 SNS 앱을 접속했다가 한 이웃님이 감사일기에 대해서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실 내용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다만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쓴 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제 마음에 울림을 준 날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일기를 쓴다는 사실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부자가 된 유명 강사들이 감사일기를 써야한다고 외치는 강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 삶에 적용할 의지는 1%도 생겨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날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온라인의 누군가가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는 그 사실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그때의 그 글이 3월 말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함께 쓰는 '감사일기' 

저는 타인과 경쟁하는 게 제 노력의 원동력인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점수와 등수에 매우 민감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 성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남과의 '비교'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었어요. 자연스레 제 머릿속에서는 그리고 제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도 참 많이 했죠.

이런 제 성향이 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나니, 그것도 셋이나 낳고 보니 이런 저의 부정적 성향은 제 삶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도 갉아먹는 해로운 습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1년 반 전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전에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세 아이를 돌보면서도 세 달 동안 30권 넘게 읽었습니다.

책이고 강의고 닥치는 대로 읽고 보며 깊은 내면의 우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어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존감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마음의 건강을 얻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던 중 글 초반부에 밝혔듯 블로그에서 한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다는 글을 읽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100억대 자산가가 아니라, 평범한 내 이웃이 감사일기를 쓴 다는 그 글이 오히려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올해로 8살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첫째 딸에게 같이 감사일기를 써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딸은 말을 꺼낸 지 1분도 채 안되어 함께 쓰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 남편에게 제안하지 않고 첫째에게 제안했던 건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첫째는 참 많이 닮았어요. 경쟁심이 많고 시기와 질투, 승부욕도 많아서 어쩜 이렇게 어릴 때의 나와 비슷할까 싶은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혹여 아이가 자라서 저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될까 걱정이 커지고 조바심도 났어요. 이런 첫째에 대한 걱정의 뿌리는 제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고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가 되어있더라고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어 혼내기도 많이 했고 아이의 느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나쁜 말을 입으로 쏟아내는 순간도 종종 있었어요. 눈물과 후회의 밤도 있었지만 제 성향이 쉽게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꼭 이 아이와 함께 감사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아니라 저의 첫째와 함께 쓰고 싶었어요. 저와 닮은꼴로 자라고 있는 딸과 함께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 둘 모두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보고 싶었어요. 일상을 바라보는 부정렌즈를 빼버리고 긍정의 렌즈로 바꿔 끼우고 싶었답니다. 다행히 딸은 첫날부터 감사일기를 잘 썼습니다.

'감사일기' 쓰니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와 첫째는 하루를 보내고 잘 준비를 마치면 같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감사일기를 씁니다. 오늘 하루 중 감사했던 것에 대한 글을 3가지로 정리해서 쓰고 상대방에게 읽어줘요. 그리고 한 명이 대표로 마무리를 하고 마칩니다. 하루하루 써온 감사일기가 어느덧 쌓이고 쌓여 아이는 이제 두 번째 수첩을 마련했어요. 두 달이 지나자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먼저,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아이의 행동 중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생각과 제 기준으로 아이를 앞서서 판단하고 나무랐죠. 하지만 아이가 쓴 감사일기를 듣는 과정을 통해 저의 생각보다 더 사려 깊은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아이의 속생각을 바쁜 일상을 보낼 때는 들을 여유가 없어요.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는 시간만큼은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일 수 있어요. 진짜 대화가 오고 가는 것입니다. 매일 시작할 때는 '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더라? 무슨 말을 쓰지?' 고민으로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일기의 내용 3가지를 수첩 한 장으로도 모자라 두 번째 장에도 적는 아이를 보게 되었어요. 마냥 어린아이만은 아니구나. 우리 아이도 좋아하는 일(감사일기 쓰기)을 할 때는 이렇게 반짝이는 눈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일상의 작은 일에도 정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때로 다투었을 때에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을 위해 애써준 부분을 떠올려보면 감사할 수 있게 되었고, 세 아이들을 돌보며 때때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일상에 감사할 거리가 넘쳐서 3가지를 쓰는 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이웃이 나눠준 딸기 한 바구니가 감사했고 감사일기를 쓴 지 9일째에 접어든 것도 감사했습니다(실제 제 감사일기 내용의 일부입니다).

감사일기를 쓰는 동안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독감에 걸려서 격리를 한 적도 있고 첫째가 많이 아파서 아이가 눈물을 펑펑 쏟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도 감사일기 쓰기는 어김없이 이어졌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우리가 맞이한 어려움에 걸려 넘어져서 불평과 탄식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감사일기를 쓴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날 힘을 충전하는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더불어 아이의 글쓰기 실력도 날로 좋아졌습니다. 저는 요즘 종종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삶과 글을 쓰지 않았던 이전의 삶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에게도 글 쓰는 삶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책상으로 끌고 와 뜬금없는 주제를 던져주며 또는 아이는 원치 않는데 일기를 쓰자고 한다면 이 또한 아이에게는 부담과 강요로 느껴질게 뻔하니까요.

아이와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준 '감사일기'

아직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상 일기 쓰기 숙제도 없고 알림장 쓰기 활동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두 달 동안 매일 세 문장을 꾸준하게 쓰면서 아이의 작문 실력이 느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이게 바로 글쓰기 교육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오늘 하루를 재빠르게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그 사이에서 3가지 감사거리를 쏙쏙 뽑아내서 고민하며 적어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이의 삶에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리는 것 같아 엄마로서 참 뿌듯합니다.

저에게는 감사일기가 아이와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되었고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글을 뜨문뜨문 읽는 둘째, 그리고 막 두 돌을 지난 셋째, 그리고 남편도 함께 동참하도록 방향을 잘 제시하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저와 딸은 일상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으니 이제 이 긍정적인 시간을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날을 꿈꿔봅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가능하겠죠? 다섯 식구가 쓴 감사일기를 돌아가며 읽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행복하게 저녁시간을 마무리하길 기대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저와 딸도 쓴 감사일기, 여러분도 한 번 써보시길 조심스레 추천합니다! 가족 중 누군가와 함께 쓰면 금상첨화입니다. 일상을 감사의 눈으로 보면 삶이 분명 달라질 거예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감사일기#자기계발#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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