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종묘사에 가서 남부지방에서 지금 파종해도 되는 채소 씨앗들(강낭콩, 쑥갓, 대파, 당근)을 샀습니다. 비트 모종도 두 줄(14개) 샀고요. 새로 산 씨앗들을 심으려면 묵정밭을 일궈야 합니다. 동네 어르신이 짓던 밭인데 이제 연로하셔서 농사짓지 않고 방치한 지 벌써 십 년도 더 된 밭입니다.
밭 위에 솟아난 마른풀들을 걷어낸 곳부터 괭이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안 하던 괭이질을 하려니 금방 지쳐 쉬엄쉬엄하였습니다. "관리기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라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다, 관리기 사용하는 사람이 '유기농'은 어찌 하겠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꼭 관리기를 써야 한다면 동네 아저씨들이나 시청 농업기술센터에 부탁해 빌릴 수도 있을 겁니다. 관리기로 밭을 일구면 훨씬 편하겠지요. 하지만 편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차라리 수고스런 농사를 안 짓는 게 나을 겁니다.
마른 잡풀을 지난주 먼저 제거해 둔 상태의 밭을 괭이질하는 건 그래도 할 만하였습니다. 오늘 가장 힘든 작업은 잡풀이 우거진 묵정밭을 새로 일구는 일이었습니다. 잡풀이 자잘한 크기라면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조금만 닿아도 옷에 여기저기 달라붙는 '옷도둑'이란 풀이 곳곳에 있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습니다.
'눈이 게으르다'는 말처럼, "이 너른 곳을 어찌 다 밭으로 만들꼬!" 이런 생각을 하며 갈퀴질과 괭이질을 두어 시간 하였습니다. 쇠갈퀴로 먼저 잡풀과 돌멩이 따위를 걷어낸 뒤 괭이질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괭이질로 딱딱한 땅을 부드럽게 만든 또 다시 다음 풀들을 쇠갈퀴로 걷어내었습니다. 혹시나 흙속에 풀들이 묻혀 있으면 조금 지난 뒤 금세 삐져나오기에 숨은 풀들까지 찾아내느라 쇠갈퀴질을 세 차례쯤 하였습니다. 그런 뒤에야 밭다운 밭의 모습으로 바뀌더군요.
지난번 잡풀을 걷어내는 작업을 해둔 밭은 괭이질을 한 다음 그곳에 비트 모종과 대파 씨앗을 심었습니다. 작년에는 옥수수를 심었던 밭인데 올해는 옥수수보다는 가정 식탁에 자주 필요한 쌈채소인 쑥갓과 대파, 비트를 심었습니다. 옥수수는 따로 밭을 더 일궈서 심을 생각입니다.
묵정밭을 새로 일군 곳에는 당근 씨앗을 넣었습니다. 당근은 물빠짐이 좋아야 하고 흙도 부드러워야 밑이 튼실하게 잘 들더군요. 거름도 넣어 줘야 합니다. 거름이 많이 부족한 편인데 우리집 닭장의 닭똥 거름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자 합니다. 닭이 다섯 마리에 불과해서 닭똥이 많지는 않지만 부지런히 모을 계획입니다. 또 음식물 쓰레기로 만드는 퇴비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농사는 풀들을 잘 달래며 해야 합니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농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작년까지는 잔디 깎는 예초기로 풀을 깎으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충전식이라 전력이 약해 자고나면 무섭게 자라는 풀들을 상대하긴 힘에 부칩니다.
하지만 작년 말에 새로 얻은 예초기가 있기에 이제는 큰 염려는 없습니다. 다만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써야겠지요. '저 너른 묵정밭을 언제 일구나!" 하면서 걱정했는데 어느덧 밭 만들기 작업이 끝났고 비트, 대파, 쑥갓, 당근, 완두콩 씨앗 파종까지 마쳤습니다.
이번 당근 씨앗은 꽤 굵었습니다. 심으면 대부분 돋아나기에 간격을 잘 벌려 심었습니다. 강낭콩은 밭 가장자리나 나무 무더기 주변에 심었습니다. 그러고도 강낭콩, 쑥갓씨, 당근씨, 대파씨가 남았습니다. 남은 씨앗들도 여력이 되면 또 밭을 더 만들어 심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