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무엇보다 '대통령 윤석열'이 그 증거다."
이춘재 한겨레 기자가 쓴 <검찰국가의 탄생 -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이 나온 직후인 올 초 설 명절 연휴에 읽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명절 기분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검찰개혁이 좌초되고 문재인 정권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자가 대통령이 돼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을 임명하면서 그걸 '법치' 실현이라고 우기고, 검찰이 지배하는 국가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괴롭고도 분통 터지는 일이다.
법치주의란 낮은 단계에서는 개인의 권리보호, 중간단계에서는 인간존엄 및 정의의 요청, 높은 단계에서는 사회복지(실질적 평등, 복지, 공동체 보존)를 의미하지만 윤 대통령에게 법치란 검찰 조직과 법을 통한 지배에 불과하다.
검찰 권한만 강하게 만든 검찰 개혁
검찰개혁만 실패했나? 성과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매정한 평가이겠지만 검찰국가는 그 작은 성과들조차 모두 무위로 돌리고 있다. 그렇지만 복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 원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새로운 여정은 불가능할 것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인 2017년 5월 23일 봉하마을을 찾아 "이제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의 친구로서, 검찰개혁을 포함한 개혁의 시도와 좌절,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까지 목격한 대통령의 다짐이었기에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고 믿음이 갔다.
검찰개혁으로 한정하면, 피의사실공표, 표적수사, 먼지털기식 수사, 별건수사, 봐주기 수사 등 정치검찰의 폭주와 권한남용의 피해를 직접 겪었고 그에 대한 비판과 검찰개혁에 대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놓았다. 전관예우, 스폰서검사, 그랜저검사 등 비리 사건도 많았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한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방향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폭넓은 합의도 있었다. 개혁을 위한 여러 법안도 제출되었고 입법이나 법 개정 없이 정부의 권한으로 즉시 시행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개혁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해 착착 진행하면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검찰개혁 3법이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사와 경찰의 관계를 대등한 지위의 '상호협력관계'로 규정하면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게 독자적인 수사종결권을 부여했다.
검찰청법을 개정해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6대 범죄)에 대해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법을 제정해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주된 내용이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에 있음에도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존치하고,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의 개정만으로 직접수사 범위를 확장할 여지를 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6대 범죄를 왜 검사가 직접 수사해야 하는지 근거도 불명확하다.
나중에 '검수완박'으로 불린 개정법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되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으로 모법의 취지를 벗어나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음은 익히 알고 있는 대로이다.
이렇게 검찰권한은 크게 축소되지 않은 반면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 수사경찰과 과 행정결찰의 분리, 정보경찰의 폐지 등 독자적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경찰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도 장악했다.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극복해 기소독점주의를 극복해 기소다원주의를 도입할 것으로 기대된 공수처는 규모가 너무 작고, 기소할 수 있는 대상도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의 고위공직자범죄와 관련 범죄에 한정되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심지어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기소 요구 등으로 존재 이유와 전혀 걸맞지 않은 헛발질을 하고 있다.
왜 실패했나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에게 적폐청산 수사의 주도권을 준 것을 그 첫 원인으로 꼽는다. 적폐청산 수사에 올인하느라 '정권 초반'이라는 최적의 타이밍을 놓쳤고, 검찰의 과도한 힘은 '직접 수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윤석열의 요구대로 직접 수사를 전담하는 특수부를 확대해 검찰의 힘을 '역대급'으로 키워줬다는 것이다.
적폐 수사에 동원한 수사 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유죄추정과 피의사실공표, 무분별한 압수수색 등이야말로 검찰의 대표적 적폐이자 개혁대상임에도 정적을 제거해주는 '칼맛'에 취해 윤석열 사단에 힘을 몰아주었다. 그 바람에 윤석열 검찰은 정치검찰에 만족하지 않고 정국을 직접 주도하는 '검찰정치'로 나아갔고, 검찰개혁의 실패는 검찰국가라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언론의 책임도 지적한다. 진보언론도 '검찰 받아쓰기'와 '검찰발 단독'에 오랫동안 길들어진 채 검찰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해, '언론플레이'에 능한 윤석열 사단이 제공하는 검찰발 단독 기사를 덥석덥석 받아썼다는 것이다. 조국 수사를 계기로 한 데스크의 뒤늦은 각성은 취재 기자들에게 '불순한 의도'로 의심받았고 이후 국면에서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적폐수사를 한 것 자체가 문제였을까?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을 내세워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대했다."(73쪽), 이명박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8년 3월 22일은 "친노·친문 진영의 숙원이 해결된 순간"(78쪽),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적폐청산은 문재인 대선 후보의 경선 전략일 뿐 박근혜 탄핵에 동의한 국민들의 공통된 요구와 거리가 멀었다."(119쪽), "적폐청산은 국민을 편 가르기 시작했고, '국민통합'을 공허한 말장난으로 만들었다."(120쪽)는 등의 평가를 보면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한 평가도 혹독하다. 저자는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이후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진정한 정의의 사도'로 등극"하려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을 "사냥감"으로 삼았다고 본다.
공소장을 법률문서가 아닌 한편의 소설로 비하한 양승태의 진술을 인용하며, 무차별적인 압수수색과 피의사실공표 등으로 화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은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국정농단과 탄핵을 통과한 국민들의 당연한 바람이었고, 이를 받아안은 새 정부의 절실한 과제였다는 점, 관련자들의 혐의가 권력 사유화와 남용, 정경유착 등 하나 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였다는 점, 촛불이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불가역적으로 정상 국가로 전환하게 하는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구체제의 청산이 필수라는 점에서 적폐청산 수사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검찰에게 지나치고 의존하고 힘을 실어준 탓에 검찰 권력을 근저에서부터 혁파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으며, 검찰의 반발을 무릅쓸 만큼 강력한 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어쩌면 검찰공화국은 윤 대통령에 의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적폐 청산을 국정 과제의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개혁의 대상인 검찰을 개혁의 최고 주체가 되게 한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이미 완성된 것은 아닐까?
쉽지 않았겠지만 경찰이 수사를 주도하고 검찰은 공소기관으로서 법리 검토와 수사의 적법성 통제에 집중해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검찰 수사를 최우선으로 두기보다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과 정치·사회적 대개혁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의 평가도 동의하기 어렵다.
고위법관 출신이기에 가능한 재판지연 전략 탓에 재판거래 의혹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 사법농단에 대한 잇단 무죄판결은 대법원장 등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있으니 권한 남용도 없다는, 직권남용죄의 적용 범위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 탓이라는 점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국정조사 등을 통한 진상규명, 징계, 탄핵 등 책임 추궁이 없었다는 점과, 위계적·관료적 사법구조를 생산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위험을 대폭 증가시키는 사법과 행정의 일원체제 개혁을 위한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인사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정권 초기에 검찰개혁 의지가 강한 인물들이 중용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검찰 출신인 박형철,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인 홈플러스를 변호한 이인걸 등이 민정수석실에 임용되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참모가 아닌 윤석열의 참모 역할을 한 윤대진 검찰국장이 중용되어 검찰인사는 윤대진-박형철 라인에 포획되어 윤석열 입맛대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최대의 인사 실패는 검찰주의자로서 대검의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특수부 검사들의 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검찰의 기득권 수호에 적극적이었고, 측근과 검찰을 적극 비호하는 이중기준을 적용했으며,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사주를 사적으로 만나 등 정치적 야심이 많았던 윤석열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의로운 검사로 치켜세우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검찰 권한 강화하려는 시도 저지가 우선
조국 사태 이후 임명된 추미애 법무무장관도 구원투수로서는 실패했다. 추-윤 갈등은 검찰개혁의 모든 아젠다를 덮어버렸고 법무부장관의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불가능해졌다. 윤석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정권교체 여론을 급등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되돌아보며 저자는 문재인 정권은 검찰개혁에 과연 진심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검찰정권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의 오만과 무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206쪽)이었고, 검찰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는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의 달콤한 유혹과 단절하지 못한 입진보"덕에 현실화되었다고 마무리 짓는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검찰개혁에 진심이었고, 겸손하고 유능했더라도 검찰개혁에 실패했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검찰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고 검찰의 전횡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 대한 국민적 통제와 감시라는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