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남편은 청첩장 모임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남편은 청첩장 모임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 pixabay
 
'청첩장'이라는 이름의 청구서 

지난가을 남편은 종이로 인쇄된 아들의 청첩장 꾸러미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청첩장이라는 것이 자칫 상대에게 원치 않는 부담이 될 수도 있기에 기꺼이 초대에 응할만한 관계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민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남편 역시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한때 고등학교를 다녔던 지역으로 돌아와 20여 년을 살다 보니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동창의 경조사까지 연락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하던 고민이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였다.

남편은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정말로 기뻐해 줄 만한 친구와 지인들을 꼽아보겠다며 옛날 사진 앨범까지 모두 꺼내 거실 탁자 위에 펼쳤다. 앨범 속에는 어쩌다 보니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산과 바다로 어울려 다니던 몇몇 친구와 친지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나간 인연이라고 묻어두기에는 아이들과의 추억이 얽혀 있다 보니, 그 아이들은 또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그땐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며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남편은 지난 앨범을 들추면서 특히 그런 인연과 멀어진 채 흘려보낸 시간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결혼 당사자인 아들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자신만의 지인들보다는, 아들과 어느 한때를 함께 했던 인연들이라면 결혼식 초대가 어쩌면 다시 만날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남편은 용기를 내어 먼저 관계가 소원해진 이종사촌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생들은 남편의 연락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10여 년 전 어머님(동생들에게는 이모가 되는)이 돌아가셨을 때 아무도 연락해 주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간 것이 지금껏 서운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편은 의외의 내막에 아차 싶었다고 한다. 친척들 중 누군가로부터 분명 부고를 들었을 거라고 믿어왔던 남편은 오지 않은 동생들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일면 서운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들 입장에서는 제때 연락을 주지 않은 형(남편)에게 서운함이 쌓였던 거였다.

사촌동생들과의 관계 회복 성공에 고무된 남편은 아들의 결혼식 청첩장을 들고 그동안 만남이 뜸해진 보고 싶었던 친구와 지인들을 찾아 옛 추억을 소환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중에는 지역에서, 주말에는 거의 매주 서울로 올라가 청첩장 모임을 가졌다.

'청첩장 모임' 포기 선언한 아들... 아빠는 달랐다 
 
 남편은 아들의 결혼식까지 남은 두 달을 꽉 채워가며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과 다시 만났다.
남편은 아들의 결혼식까지 남은 두 달을 꽉 채워가며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과 다시 만났다. ⓒ unsplash
 
남편은 아들의 결혼식까지 남은 두 달을 꽉 채워가며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과 다시 만나 인생 회포를 풀었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찍었던 옛 사진과 현재의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흘러버린 시간과 인연의 한 지점들을 추억했다.

하지만 정작 결혼을 앞둔 당사자인 아들은 돈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청첩장 모임 문화의 폐해를 부르짖으며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남들 다 한다니까 하는 건가 보다 싶어 모임을 시작했지만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만남 날짜를 맞추고 얼마짜리 밥을 먹느냐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이걸 왜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밥도 안 사고 청첩장만 주는 것은 양심 없는 행동이며, 축의금에 상당하는 술과 밥은 당연한 예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돌려받을 확률을 장담할 수 없는 청첩장이 반갑지는 않을 테니, 그런 관계에서 받는 축하 역시 본인도 기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관계의 거리감과 상대방의 그것이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런 아들의 눈에는 멀어진 옛 지인들에게 불쑥 연락해서는 청첩장(청구서)을 내밀며 술자리를 이어달리는 아빠의 모습이 적잖이 우려스러우면서도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청첩장이 아빠의 옛 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근심 어린 걱정을 내비치곤 했다.

아들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남편과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일주일 일정의 여행 짐을 꾸렸다. 대구, 부산, 거제, 남해에서 소원해진 지 오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먼 곳까지 찾아와 준 친구와 친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다니는 여행이었다.

예고 없이 하는 방문이니만큼 그들의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 한잔 함께할 만큼의 시간과 동선을 짰지만, 어느 만남도 다시 또 만났다는 기쁨의 세리머니는 쉽게 끝나지지 않았다. 남편은 매번 거나하게 취했고, 또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예정된 만남을 모두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아들 결혼식이 이렇게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어. 청첩장 모임이 나한테는 좋은 기회였던 거 같아"라고.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청첩장#축의금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안의 편견과 아집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덜어지길 바랍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