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도시지역 인구비율은 90%가 넘는다. 2018년 UN 자료에 따르면 도시화율은 2017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도시에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 수치만 보면 도시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시화율이 높아질수록 기후위기, 빈곤과 불평등, 공동체 해산 등 도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책 <도시의 승리>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도시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도시민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주 실패를 맛보는 것 같다. - 36쪽, <도시의 승리>
밀도는 높이고, 거리는 줄이는 '15분 도시'
오늘날 당면한 도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책 <도시에 살 권리>는 지속가능한 도시로서 '15분 도시' 개념을 제안한다. 15분 도시는 15분 이내에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 가능한 도시다. 기본적인 서비스에는 주거,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 등이 포함된다. 도시에서 이뤄지는 활동이 거의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책 <도시에 살 권리> 저자 카를로스 모레노는 복잡계 연구자이자 시스템 과학자다.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 제1대학 팡테옹-소르본의 부교수이자 파리시 도시 정책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레노의 15분 도시 개념은 현재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가 정책화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저자는 "밀도란 도시가 지닌 미덕이며 거리는 반대로 도시의 해악"이라고 말한다. 15분 도시는 밀도를 높이고 거리를 줄이자고 비전을 제시하는 개념이다. 밀도를 높이면 인프라 이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효율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전기, 가스, 수도 등이다. 반면 거리가 멀어질수록 인프라 설치 길이와 면적은 커지기 때문에 인프라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거리가 늘어나면 두 발 혹은 두 바퀴로만 이동할 수 없게 된다. 지하철, 버스 혹은 승용차에 의존해야만 한다.
자동차를 몰아내자
15분 도시 개념도를 관찰해 보자. 우리가 도시에서 늘 보던 자동차가 없다. 저자는 15분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적인 이야기를 한다.
첫째, 저자는 자동차를 몰아내고 보행자들이 도시를 전유하자고 도발적으로 주장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동차들을 도시밖으로 몰아냄으로써 보행자들이 다시 도시를 전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 p.38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만 둘러봐도 거리는 자동차에게 뺏긴 지 오래다. 행정구역상 시에 해당하는 도시들은 '교통 원활'이라는 이유로 차도를 뻥뻥 뚫어줬다. 자동차는 그 위를 쌩쌩 달린다. 그 와중에 정체가 되기라도 하면 경적 소리를 낸다.
필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때때로 자동차의 '협박'을 느끼기도 한다. 빨리 가라는 압박처럼 내게 자동차 머리를 들이밀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골목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골목마다 주차된 자동차가 가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주행하는 자동차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면 틈을 찾아 숨었다가 자동차님(?)을 보내고 걸어야만 한다. 도시 거리를 자동차에게 빼앗겼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15분 도시는 도보와 자전거로 도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자동차 없는 도시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것과 같다. 거리에 자동차를 없애면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도 줄어든다. 자동차 이용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줄어들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도시계획을 통한 공유에 해답이 있다
둘째, 저자는 공유에 해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15분 도시는 '하나의 장소, 여러 용도', 아니 모든 가능한 새로운 사용을 의미한다. - p.143
하나의 장소를 여러 용도로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기존 도시 공간은 다소 단일 목적으로 이용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낮 시간엔 나이트클럽을 스포츠센터로 사용하며 스포츠센터는 학교 수업을 지원하며 인근 상업시설은 물품 수선 교육을 겸비하는 식"으로 도시 공간을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시 강동구에서는 주말에 넓은 보행로를 플리마켓 공간으로 활용한 바 있다. 어쩌면 이미 국내에서 15분 도시의 씨앗이 심겨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통찰력이 좋은 이들은 이미 간파했겠지만, 도시 공간을 공유하는 행위의 핵심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데 있다. 저자는 시간 개념을 더해 도시를 만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래야만 이미 존재하는 시설들이 기존의 기능과 다른 기능, 다른 사용자,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 다른 이용객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도시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 가령 학교를 방과 후엔 사회 활동이나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럴 때를 우리는 '크로노피아(chronotopia)'로 말할 수 있다. - p.133
기존 도시는 물리적인 공간 밀도를 높이는 것에만 치중해왔다. 지금까지는 면적 대비 공간(부피)으로 계산된 3차원적 효율성을 계산했다면, 크로노피아 도시계획은 4차원적 효율성을 계산하는 것이다.
저자는 15분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무엇에,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에 필요한 것이 장소에 대한 애착이라고 말한다. '토포필리아'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는데, 장소에 대한 애착이 도시를 공동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민 참여와 투쟁이 없이는 공유 기반의 시간도시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있는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공동의 자산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 p.39
서울에도 적용 가능할까?
국내에서 15분 도시를 구현해 낼 수 있을까? 프랑스 국민 80%가 국토 20%에 해당하는 면적에 거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 50%가 국토 면적 12%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상황이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국토의 일부에 국민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국내 도시 연구자들이 15분 도시 개념을 주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수십 년은 앙리 르페브르가 이론화한 '도시에 대한 권리'의 시대로, 각종 도시운동에는 주거다운 주거를 위한 투쟁이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에서의 삶을 누릴 권리'가 사회적 불만의 중심에 놓여 있다. - p.102
반면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파리에서 '도시에서 살 권리'를 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이유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주거 투쟁 운동 전면에 서서 나서진 않았지만 운동권에서는 르페브르의 '도시권'을 주요 투쟁 언어로 삼았다.
이후로 완벽하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사회주택 제도와 사업을 통해 주거권은 개선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거를 위한 투쟁이 선행되었기 때문에 도시 서비스를 누릴 권리에 관해 논의되었다고 본다.
필자도 무주라는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서울시민이 되었다. 한때 안산 반월에서 서울 삼성동까지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면 8시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나처럼 수원, 용인, 남양주 등에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를 출퇴근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안산에서 출퇴근하던 것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기이하지 않은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겠는가. 서울에 적정한 가격의 살만한 집은 없지만 일자리는 몰려 있기 때문이다. 2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서울로 오는 것이다. 일자리를 서울 바깥으로 분산을 하든, 서울 내 주택 가격을 낮추든 해야 한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파리의 '15분 도시'를 수학 공식 대입하듯 대한민국 도시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15분 도시를 실현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도시 연구자로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15분 도시 개념도를 펼쳐놓고 우리 도시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영감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실제로 파리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리우데자네이로나 뭄바이, 서울, 시드니, 라고스 또는 카이로에도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영토에 단단히 발 딛고 있는 시민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도시의 모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영감의 원천만이 존재할 뿐이다. - p.36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