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자치도가 제주 제2공항에 대한 도민의 요구를 듣겠다고 마련한 경청회가 찬성·반대의 입장을 지닌 주민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제2공항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선동가" 등의 언어를 사용하며 반대 측 주민을 자극해 양측이 충돌하며 경청회가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제주자치도가 29일 오후 3시, 성산국민체육관에서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안)에 대해 제주도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제1차 도민경청회를 열었다. 이날 경청회는 환경부가 국토부에 '도민에게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알리라'고 제안하고, 오영훈 도지사가 제2공항에 대해선도민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한 약속에 따라 열렸다. 평일임에도 현장에는 도민 500여 명이 참석해 제2공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안) 용역에 참여한 포스코이엔씨의 정기면 이사가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안)을 설명했다. 정기면 이사는 ▲제2공항 건설 추진 배경 및 경과 ▲항공수요 예측에 따른 제2공항 운영방안 ▲시설규모 및 배치계획 ▲환경관리계획 ▲지역 상생방안 ▲건설·운영 및 재원조달계획 등 제2공항 건설 추진계획 및 방향 등을 차례로 설명했다.
정기면 이사는 지난 2년,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쟁점이 됐던 환경과 생태계 이슈에 대해서는 항공기 안전과 자연·생활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조류와 맹꽁이 서식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환경부가 요청한 대로 지자체와 주민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제기되는 문제를 검토해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정 이사의 발표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경청회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제2공항 반대단체와 찬성단체 대표가 서로의 입장을 발표하는 순서가 되자 장내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제2공항 반대 측 "전략환경영향평가 문제 있어"
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가 마이크를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박 대표는 '갈매기 등의 영향이 흑산공항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평가됐는데 제주 제2공항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평가됐다'며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정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결정할 당시에 제주도 항공 수요를 연간 4500만 명으로 예측했는데 지금은 3900만 명으로 수정했다'며 '그렇다면 제주 제2공항이 필요한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찬식 대표가 의견을 발표하는 과정에 방청석에서 야유가 쏟아져 발표가 여러 차례 중단됐다.
오병관 제주 제2공항 성산읍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이어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병만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관광청을 성산읍에 신설해야 하고 제주도가 제2공항 운영에 참여해 수익 일부를 성산읍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산읍 상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안했다.
오병만 위원장은 '그동안 제주도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제주도 공항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성산읍에 제2공항에 대해서는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환경부가 일찍이 찬성해야 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정치권이 압박에 못 이겨 두 번이 반려해야 했다면서 제주도 국회의원은 8년 갈등의 주범이라고 꼬집었다.
제2공항 찬성 측 "전략환경영향평가, 정치권 때문에 두 번 반려"
방청석에 앉았던 주민들도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신양리 주민 A씨는 "고향에 제2공항이 들어서는 걸 누구보다 반겼지만 반대하는 주민도 친척이고 이웃이어서 6년 동안은 찬성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 측이 "언론을 선동하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한 그는 "주민투표는 이해 당사자들이 해야 하는데, 이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주민투표가 필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의 발언이 끝나자 반대 측 참석자들이 "왜 우리가 외부세력이냐?"라며 격렬하게 항의했고, 양측이 충돌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제주자치도 관계자들이 만류로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경청회는 가까스로 재개됐다.
또, 자신을 7살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하며 발언에 나선 B씨는 "국토부가 이 공항을 순수 민간공항이라고 했는데, 국방부가 제주도에 공군기지가 필요하다고 했다"라며 "국방부 관계자를 이 자리에 불러서 이 공항이 군사공항이 아니라는 답을 듣기 전에는 제2공항을 찬성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제주자치도는 행사장 입구에 의견 제출서를 비치해 시민들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경청회장을 드나드는 시민들은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써서 제출했다.
이날 행사장 주변에는 서귀포경찰서 대원들과 119대원들이 배치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