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기괴한 강제동원 해법을 당장 철회하라."
4일 오후 4시 30분, 경희대 교수 14명이 이 같은 제목이 크게 적힌 시국선언문을 들고 서울 경희대 청운관 앞마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시국선언문엔 경희대 교수 126명의 실명이 적혀 있다.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 엿새간 시국 선언에 서명한 교수들의 이름이다.
"강제동원 해법 철회하라"... 교수와 학생이 함께 구호 외쳐
그런데 이때부터 기자회견장 주변에 학생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국선언문을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눠주는 학생들도 보였다. 교수들 숫자보다 10배 이상이 많은 150여 명의 학생이 길을 오가다 발길을 멈춘 것. 학생들은 교수들 발언에 박수를 보내고, 나중엔 연단에까지 올라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가해자에겐 면죄부를, 피해자에겐 치욕감을 주는 강제동원 해법 철회하라."
이날 경희대 교수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분하다"는 말로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대법원 판결을 뒤엎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며 역사를 퇴행시켰고, '제3자 변제'라는 기괴한 방식으로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분하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최근 윤 대통령의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일본의 침략역사와 전쟁범죄를 승인하고 노골적인 역사 왜곡의 길을 터주는 항복 외교이자 굴종 외교"라고 규정하면서 "국내 기업의 돈을 피해자 호주머니에 찔러주기만 하면 우호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함을 넘어 아둔함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교수들은 "역사와 양심의 나침반을 깨버리고 정녕 이 나라를 어디로 향하게 하려고 하는가"라면서 "자국민의 심장을 찔러 정녕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끝으로 교수들은 "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한일 양국의 양심적 시민들의 노력과 역사의식을 무시하지 말라"면서 "굴욕적 한일회담을 반성하고 기괴한 강제동원 해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서보학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이 같은 시국선언을 모두 낭독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마이크를 잡은 박윤재 교수(사학과)는 "이번 윤 대통령의 해법은 한일 관계의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여지를 폭력적으로 없앴다"면서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에 오히려 방해가 됐다"고 진단했다. 유원준 교수(사학과)도 "잘못된 한일 해법은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켜보던 학생들, 앞으로 나와... 더욱 커진 목소리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응원하기 위해 참여한 지소원 학생(사학과)은 "이런 순간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참여교수들이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괴한 강제동원 해법을 철회하라."
하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잠시 뒤 응원을 하던 학생들이 앞으로 나와 교수들과 어깨를 맞댔다. 이들은 함께 같은 구호를 외쳤다. 목소리가 10배는 더 크게 들렸다. 교수들의 얼굴이 더욱 밝게 펴졌다.
아래는 이날 발표된 시국선언문 전문이다.
[시국선언문 전문] 윤석열 대통령은 기괴한 강제동원 해법을 당장 철회하라
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대법원 판결을 뒤엎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며 역사를 퇴행시켰다. '제3자 변제'라는 기괴한 방식으로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이후에 구상권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피해자들이 십수 년을 싸워 획득한 사법적 권리를 내팽개치고,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명확하다.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기업의 책임이 분명하니 피해자들에게 강제징용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국가충동원법 (1938년)에 의거해 제국주의 일본과 전범 기업들은 정책적 조직적 집단적 폭력적 계획적으로 각종 산업현장에 조선의 민중들을 강제로 징용했다. 그들은 달콤한 취업 조건을 미끼로 피해자들을 강제 노동에 끌어들였다. 거짓말임을 알고 항의해도 붙잡아 두었다. 그만두겠다고 하면 두들겨 팼고, 도망가면 잡아와 다시 두들겨 팼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비참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상한 몸과 빈손으로 해방을 맞이했다.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일본 기업의 전시 범죄에 대한 단죄인 것이다. 그동안 외롭게 법적 투쟁을 해 온 피해 당사자들의 노력은 인류 보편적 정의와 인권은 무엇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받은 쾌거라 할 수 있다.
식민 지배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전범 기업에 대한 배상 요구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왜곡하여, 개인청구권에 따른 사죄와 배상 의무를 함부로 거역할 권한은 누구도 부여받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에겐 면죄부를, 피해자에겐 씻을 수 없는 치욕감을 주는 조치는 대승적 결단이 될 수 없다. '강제 징용'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 왜곡하는 일본과 맺는 '건전한 양국 관계' 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의 침략역사와 전쟁범죄를 승인하고 노골적인 역사 왜곡의 길을 터주는 항복 외교이자 굴종 외교였다. 국내 기업의 팔을 비틀어 마련한 돈을 피해자 호주머니에 찔러주기만 하면 과거사가 잊혀지고 우호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함을 넘어 아둔함의 극치라 말할 수밖에 없다.
침략역사를 왜곡하고 군사 대국화를 포기하지 않는 일본을 보라. 자유무역의 기본 질서를 훼손한 경제 보복 조치, 식민 지배에 대한 변함없는 미화, 일본군'위안부' 강제 연행 부정, 독도 영유권 주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주변국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최근 통과된 일본 교과서만 봐도,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한다거나 강제 징용을 지원'이라고 표현하는 등 역사왜곡의 강도를 더 높이고 있을 뿐이다. 반성과 사죄는커녕 평화주의를 버리고 '전쟁 가능 국가'로 탈각하면서 아시아 맹주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이 말하듯, 일본이 '군국주의 집락사'에서 '협력 파트너가 된 것이 분명한가? 조만간 분쟁과 갈등의 시대는 가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올 것이 분명한가? 우리는 믿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할 의무밖에 없다. 억울한 사람의 한을 풀어주고 차별을 줄이며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의무밖에는 없다. 역사와 양심의 나침반을 깨버리고 정녕 이 나라를 어디로 향하게 하려고 하는가? 실망과 좌절감으로 분노한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자국민의 심장을 찔러 정녕 무얼 얻으려고 하는가?
우리 국민은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강제동원 해법과 비상식적 해명에 속아넘어갈 정도로 우매하지도, 이를 묵과할 정도로 게으르지도 않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반인권적 조치를 징검다리 삼아 신냉전 체제에 편입하려는 현 정부를 그대로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사법부에서 인정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들의 권리를 배반하지 말라.
피해자들이 돈 몇 푼으로 입을 다물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
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한일 양국의 양심적 시민들의 노력과 역사의식을 무시하지 말라.
굴욕적 한일회담을 반성하고 기괴한 강제동원 해법을 당장 철회하라.
2023. 4. 4.
강제동원 해법 철회를 위한 경희대학교 교수 일동 (12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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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하다!" 경희대 교수126명 시국선언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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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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