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은 정부의 납득할 수 없는 처사에 분노를 삼키며 1995년 4월 20일 할아버지 서훈 재신청서를 보훈처에 다시 접수했다. 자료를 보충하고 내용도 다듬었다. 〈동농 김가진 서훈 재신청서(요지)〉는 이러하다.
동농 김가진 서훈 재신청(요지)
본인은 선조부이신 위의 분의 서훈신청이 1995년 보훈처로부터 보류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심한 충격을 받았으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재심 청구가 별 의의가 없을 것 같아 지금까지 재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1차 심의에서 대통령장으로 결정되었다는 광복회장 김승곤으로부터 구두로 통보 받은 바 있으나 그 후 보훈처의 요청으로 재심회의를 개최하여 보류결정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심 제안인 "독립운동전 작위 수작자로서 재논의"에 따르면 재심사유로서
1. 1910. 일제로부터 남작작위를 받음
2. 1906. 10 의병장 민종식 등이 김가진(충청도 관찰사)에게 체포되어 서울에 압송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류의 근거로서는 "일제의 국권침탈 당시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음"으로 통고받았습니다.
이미 선조부의 생애와 항일투쟁의 경력에 대하여 귀처에서 다 확인하였으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나 다음 몇 항에 주의를 환기시키려 합니다.
1. 1907년 윤웅렬·권동진·오세창·안창호·조완구 등과 대한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취임했으며 1909년에는 대한민보를 간행했음. (대한협회가 한일합병에 반대하여 조직된 단체이며 대한민보가 일진회 등의 합방음모에 정면 반박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현재 자료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2. 1919년 3월 말 비밀결사단을 조직하였으며 총재로 취임하였음.
3. 1919. 05. 23 권중현·민영달 등과 독립선언서를 작성, 배포하였음.
4. 1919. 11 중국에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최고 고문으로 취임했음.
5. 1922.06.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으나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에서는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정할 때 대통령 후보로 논의되기도 했슴.
재심사유로 제기된 의병장 민종식의 체포에 관하여는 당시 충청관찰사로서 어명에 의해 체포된 의병장을 송치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반면 동학군을 비호하였던 김학진 전라부사가 중앙정부에서 탄핵 대상에 올랐을 때 이에 적극 반대하는 등 의병활동 연루자들을 비호했음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 정부 관원으로서 국리민복에 이바지 할 수 없는 것을 통감하여 그 해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의 주권수호운동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서훈보류의 근거가 된 '남작수여'에 대하여는 당시 일제가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2품 이상을 지낸 모든 고관에게 남작 수여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합병을 지지한 사람들 에게는 남작보다 더 높은 작위가 수여되었습니다. 수작에 관한 사료도 일제의 관보에 나와 있는 일방적인 발표문만을 귀처는 인정하고 있으나, 모든 국내의 자료에서 동농은 작위를 거부, 반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작 여부조차 불확실한 것입니다. 또한 수작한 사람들에게는 연금이 주어졌으나 선조부는 연금을 받은 일이 없으며 집안사정이 망국 후 날로 어려워졌음도 여러 자료에 나타나 있습니다.
설사 수작을 하였다 하더라도 1919년 동농의 망명은 일제가 작위를 수여한 귀족까지 항일운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세계에 널리 알렸던 데서 더욱 큰 의의가 있었던 것이며 망명함으로서 작위를 내던진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임시정부에서 최고 고문으로 모셨으며 심지어 대통령 추대 논의까지 되었습니다. 1922년 7월 4일 서거하시자 임시정부 국무위원전원(박은식, 이동녕, 이시영, 홍진, 김인전, 김철 등) 명의로 부고를 냈으며 추도식에는 국무위원회 주석 홍진의 식사, 조완구의 약력보고, 이발, 안창호의 추도사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실상 임시정부장으로 치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당히 성대하게 장례가 치루어졌음이 모두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 이전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이미 임시정부에서 완결된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대한민국에서 임시정부의 존경과 극진한 대접을 받은 선조부의 서훈을 거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당한 일입니까?
이에 억울한 심정을 억누르며 재심사를 청구하는 바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