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이 낯선가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나요? 짧지만 꽉찬 단편소설을 사적으로 곱씹고 상상하는 시간, 당신을 단편소설클럽에 초대합니다.[편집자말] |
6년 만에 이 소설을 읽는다. 거실에 책을 꺼내놓고도 자꾸만 외면하고 싶었다. 읽으면 마음이 괴로워질 것을 알기에, 울고 말 것을 알기에.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입동>에 관한 이야기다.
단편소설 <입동>은 자정 넘어 갑자기 도배를 하자는 아내의 제안과 함께 시작된다. 도배를 하는 부부의 모습과 그동안 부부에게 일어난 믿기지 않는 일들이 교차된다. 아내는 왜 갑자기, 그것도 한밤중에 도배를 하려는 걸까.
지난달, 화자인 '나'(남편)의 어머니가 집에 다녀갔다. 집안 살림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온 지 열흘쯤 지났을 때, 부엌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액체가 폭발한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추석 선물로 보낸 복분자액이다.
검붉은 액체는 어머니의 몸은 물론이고 집안 곳곳에 어지럽게 튄다. 부엌 벽면 올리브색 벽지에 검붉은 얼룩이 생긴다. 나는 그 얼룩이 "마치 누군가 이웃을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갈겨놓은 낙서 같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엉망이 된 벽을 본 아내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아내는 "몹시 나직하고 상스러운 투로 뜻밖의 말을" 꺼낸다.
"아이 씨..."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반응에 당황하고, 나는 아내의 팔을 잡는다. 그만하라는 뜻이다. 그러자 아내는 비명을 지른다.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아이를 잃은 부부
부부는 지난봄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경매로 나온 아파트를 집값의 절반 이상을 대출받아 매매했다. 다섯 번의 이사 끝에 비로소 얻은 '내 집'이었다. 분양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 나는 온전한 내 집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집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그래도 나쁜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 했다.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그나마 나은 불안을 택한 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이었다. 적어도 내겐 뭔가 선택할 자유라도 있었으니까."
대학 시절부터 기숙사와 독서실을 전전했던 아내는 셀프 인테리어로 집을 정성껏 꾸민다. 아내가 가장 신경을 쓴 곳은 거실과 부엌이었다. 부엌 벽면에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를 바르고 그 아래 사인용 식탁을 놓았다. 사인용 식탁에서 세 식구는 매일 밥을 먹었고, 어린 아이가 있는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 식탁은 아이의 놀잇감이자 놀이터가 된다.
"영우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음식을 흘리고, 떼쓰고,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울고, 종알종알 분홍 혀를 놀려 어여쁜 헛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거기 사인용 식탁에서."
그 다음 장면에서 소설 전반부에 흐르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중략…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돌아온 것은 모욕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보험회사를 통해 손해배상을 해준 것으로 책임을 끝내고, 동네에서는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다. 나는 소문 자체보다 그 말을 더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더 상처받는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힌다. 나 역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지만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기에 그럴 수 없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마트에 간 아내가 십 분 만에 다시 집에 돌아온다. 아내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 쳐다본다고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당신이 과민한 거라 설득했다. 그뒤 아내는 주로 온라인 매장에서 장을 봤다. 집밖을 나서는 일이 점차 줄고 베란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아내까지 잃게 될까 두려웠다."
얼마 후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소포가 배달된다. 소포에는 복분자액과 함께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풍성한 한가위 맞으세요. 햇님 어린이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마도 실수였겠지만 "알고 보냈으면 나쁘고, 모르고 부쳤으면 더 나쁜" 소포는 결국 집안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에 '세월호'라는 세 글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세월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9주기, 지금도 304명이라는 사망자 수를 떠올리면 현실 감각이 사라진다. '설마 그게 말이 돼?'라고 되묻고 싶다.
하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애란 작가가 산문집에 쓴 것처럼 우리는 "배 안에 있는 이들과 동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배가 가라앉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배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을 실시간으로 목도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2014년 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검붉은 벽을 방치해두던 아내는 도배를 새로 하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얼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부는 마트에서 사둔 '풀 먹인 도배지'를 욕조에 담그고 풀이 붇기를 기다렸다가 도배지 양쪽 끝을 잡고 부엌으로 이동한다. 부부는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한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 도배지를 넣고 풀이 붇길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벌거벗은 영우의 작은 몸과 엉덩이에 난 푸르스름한 자국, 불룩 나온 배,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와 기분좋은 냄새가 떠올랐다."
남편은 도배지 위쪽을 잡고 아내는 아래쪽을 잡는다. 그러다 아내는 벽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하고 결국 무너지고 만다.
나는 어떤 이웃이었을까
지난 9년간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던 이웃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우리는 언론을 통해 지켜봤다. 자식이 목숨을 잃었는데 소설 속 부부처럼 세월호 유가족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욕과 공격을 당했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세월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정치적 구호로 취급됐다. 어느 순간부터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현실 속 나는 어떤 이웃이었을까. 책을 다시 펼치는 데는 6년이 걸렸지만 아래 문장만큼은 수없이 떠올렸다. 이 문장을 마주하는 게 겁나서 책을 다시 읽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영우는 여느때처럼 입에 맑은 침을 문 채 선홍색 혀를 놀려 천진하게 대꾸했다.
-응. 부릉부릉이 엄청 많아. 엄청 멋있어.
베란다 밖 8차선 도로에 길게 늘어선 출퇴근 차량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내 아이가 첫돌을 갓 지났을 때 <입동>을 처음 읽었다. 두 발로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아이는 그사이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타는 초등학생이 됐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릉부릉이 엄청 많아"라는 소설 속 영우의 말을 자주 생각했다.
아이는 영우처럼 자동차를 좋아했다. 집에는 버스, 택시, 포클레인, 레미콘, 소방차, 경찰차… 온갖 종류의 '빠방이'가 굴러다녔고, 밖에 나가면 아이는 지나가는 차를 하염없이 구경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서부터 자동차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 됐다. "차 조심. 차 위험해. 큰일 나"라는 말을 하며 아이 손을 끌어당겼다. 그럴 때마다 <입동>의 영우를, 세월호 아이들을, 아이들의 부모들을 생각했다.
"입에 맑은 침을 문" 내 아이의 "선홍색 혀"가 너무 예쁘다가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영정 사진 앞에 배냇저고리를 꺼내 놓은 유가족을 떠올리면 마음이 괴로웠다. 동시에, 그저 TV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2014년 봄의 무력했던 내가 소환됐다.
아이가 한 살 두 살 자랄수록,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될수록, 나의 행복이 죄스러웠다. 세월호 기사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조차 염치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고통을 그저 구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이어질수록 무력감과 죄책감이 커졌다.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세월호 관련 콘텐츠를 점점 멀리했다. 매달 4.16 연대에 후원을 하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10월 29일, 또 한 번의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다. 나도 몇 번이나 지나간 적 있는 서울 번화가 거리에서 159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가 그랬듯 그 거리에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있을 수도 있었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년 만에 다시 <입동>을 읽는다.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다시 단다. 4.16 연대에서 펴낸 소식지도 꼼꼼히 읽어본다. 내가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 동안 세월호 피해자들이 연대를 통해 만들어낸 변화를,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를 확인한다. 좋은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통해 고민의 실마리를 던진다. 그리고 독자를 움직이게 만든다. 당신도 올해는 꼭 <입동>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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