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은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회복이 '마지막 독립운동'이라 생각하고 열과 성을 다했다. 신문에 쓴 시론과 각종 학술강연을 통해 이를 역설하고 국회를 방문, 여야 원내 대표들에게 거듭 설명했다.
나는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쏟아야 되겠다고 다시 다짐하였다.
8월 31일(1987년 - 필자 주) 민정·민주 양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 협상을 완전히 타결, 여야 합의개헌에 성공했다. 그리고 9월 10일 국회에서 여야 공동발의키로 하였다니 통과될 것은 분명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양당의 헌법 초안을 보니 민주당 안에는 분명히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데 민정당안의 전문에는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기에, 나는 8월 6일 민정당의 이종찬 의원에게 '정신(精神)'을 '법통(法統)'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여 적극 노력하겠다는 답을 얻었고 또 민주당의 이중재 의원에게는 민주당의 안대로 전문에 '법통계승'을 고집 관철해 달라고 부탁하여 동의를 얻은 일이 있다.
이리하여 9월 8일에 새 헌법안이 발표되었는데 헌법전문은 나의 숙원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명기하고 있었다. (주석 4)
당시 집권당 원내대표 이종찬의 증언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이다.)
6·29 선언 이후 새 헌법안 작성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에게는 여러 가지 주문이 전달되었다. 특히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나를 직접 불러 이렇게 강조했다.
"이번 기회에 임정의 법통을 잇는다는 내용을 반드시 헌법 전문에 명시해야 합니다. 이 일을 이 의원 말고 누가 하겠소. 현재 민주당안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데, 민정당안은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어요. '정신'과 '법통'이라는 두 글자가 대단히 큰 의미의 차이를 낳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서 틀림없이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으로 반영해주시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다음 날 나는 헌개특위 위원인 허청일 의원에게 먼저 헌법 전문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달하면서 이같은 입장을 반영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허 의원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 부정적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헌개특위 간사인 현경대 의원을 찾아가 같은 요구를 했다. 그는 이해가 빨랐다.
"동감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시지요."
그제야 안심했다. 그리하여 1987년 10월 29일 채택된 현행 헌법의 전문은 아주 분명하게 정리되었다.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주석 5)
군사독재자들에게 '탈취'당했던 임시정부의 법통이 마침내 새헌법안에 명시되고, 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에서 총유권자의 78.2%가 투표, 투표자의 93.1%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확정되었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는 10월 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계승 기념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고 이를 자축하였다. 이 모임에는 임정기념사업회를 대표하는 임정의 마지막 국무위원으로 생존한 88세의 조경한 회장과 김영삼·김대중·이종찬 등 관계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나는 정말로 기쁘기 한이 없었고 이제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는구나 하는 감회가 깊었고, 이를 위하여 나도 조그마한 기여를 했다는 감이 들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주석 6)
주석
4> 김준엽, <나의 무직시절>, 185쪽, 나남, 1989.
5> 이종찬, <숲은 고요하지 않다> (2), 64~65쪽, 한울, 2015.
6>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