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가진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1998년 10월 개정 선포한 '청소년 헌장'의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은 저 내용에 얼마나 부합할까. 입시 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랄 것이 과연 있는가.
이들은 학교에서 입으라는 옷을 입고, 먹으라는 밥을 먹고, 좋든 싫든 학교에서 하루 3분의 1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배치되고,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보다는 경쟁이 당연시되는 현실 속에서 충남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흔히 모태 신앙이라 불리는 뼛속까지 기독인이라 자부하며 4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교회의 질서와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말이 곧 진리인 것처럼 여기며 산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 여느 주일과 다름없이 그날도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가서 주보를 읽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충남학생인권조례안, 충남인권기본조례안 폐지 서명.'
왜 서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왜 서명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성도들도 없었다. 짐작건대 '인권 조례=동성애 찬성'이라는 단순한, 그러나 무척 위험한 도식이 인권조례폐지 서명의 이유일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안 때문에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가르칠 수 있고, 그로 인해 청소년들이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러고 보니 예배 때 이런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소아성애자들도 인정해야 하고, 수간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무질서한 성행위들을 우리 자식들이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 학생인권조례 같은 것들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개탄스럽게도 '아멘'을 외쳤다. 성적지향과 성범죄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강대상에서 외쳐대는 말이 목사라는 이유로, 신뢰할 만한 진리로 둔갑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물론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역시 하나님을 핑계 삼아 반대하고 있는 다수의 교회가 진짜 하나님이 사랑은 무엇을 말하는지, 예수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의 두 아이는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이야기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은 용감하게 행동하고. 행동한 것은 성실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라는 게 그것이다. 이 말 속에는 아이들의 존재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겠다는 마음과 아이들이라도 저런 사람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믿음이 녹아있다.
나이를 떠나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모두 평등한 사람이다. 학생 인권이 교권과 대치되는 것도,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어울릴 수 없는 것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인권이 있다.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이 갖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상식이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 것 역시 그러하다. 아주 기본 중에 기본, 상식 중에 상식인 인권에 대한 것이 왜 논의가 필요하고, 찬반이 나뉘어 싸워야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누구나 평등하고,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을 위해 충남학생인권조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