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작년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어반드로잉을 처음 접했다. 펜으로 드로잉을 하고 수채화로 색을 입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어서 어디에서 어반드로잉을 베울 수 있는지 찾아보았다.
마침 멀지 않은 동네 주민자치센터에 어반스케치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변 풍경 그리는 것을 어반드로잉 혹은 어반스케치라고도 부르는데, 같은 종류의 수업이어서 지난 1월부터 신청해 배우고 있다.
첫 시간에는 자기 소개를 하며 시작했는데 15명 수강생 중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예닐곱 명 되었다. 수강생마다 그림 수업 연차는 제각각이어서 누구는 6개월을 다니고 누구는 1년을 다니고 누구는 처음인데 나는 중고신입인 셈이었다.
오래 수업을 받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선택해 그리고 새로 등록한 사람들은 선그리기와 원으로 명암 만들기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모여서 매번 다른 것들을 그리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인물 크로키를 배울 때는 한 사람씩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하고 우리는 주어진 4분 동안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짧은 시간에 인물의 특징을 잡아서 그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같은 모델로 각각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나눠주는 프린트물을 보고 식물 그리기 수업도 했다. 담장 앞에 한 그루 나무, 거기에 달려있는 커다란 잎을 그리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잎을 먼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나무 줄기를 따라 잎의 위치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여러 번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고 나서야 스케치가 완성되었다.
이제 물감을 칠할 차례다. 햇빛이 어느 방향에서 비치는지를 고려해 잎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생각하면서 색을 입혀야 한다고 선생님께 배웠다. 그런 식으로 어반스케치를 하다 보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중요해서 허투루 생각할 게 없었다.
심사숙고해서 스케치를 하고 색을 고르고 칠해야 좋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는 것,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아닌가.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4월 초에는 지역에서 벚꽃 축제가 있어 우리 반에서는 그림 한 점씩 내서 전시하기로 했다. 나는 무얼 그릴까, 찾아보다가 작년에 다녀온 스페인의 타라고나에서 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바탕의 건물 벽화가 실제인 것처럼 멋져서 찍어 놓은 사진이었다. 그것을 그리기로 결정하고 24×32cm 수채화지에 스케치를 먼저 시작했다. 중앙에 5층짜리 건물부터 자리를 잡고 왼쪽에 건물들은 원근법을 고려하면서 스케치했다. 그리고 수채화로 채색을 했다.
지역 벚꽃 축제에서 우리가 제출한 그림들은 액자에 넣어져 전시되었고 이번 수업 시간에는 교실에 그림들을 전시했다. 활짝 핀 벚꽃 그림, 시원한 바다 풍경 등 각각의 그림은 그린 사람의 성향과 특징을 나타내기도 해서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2분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보니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반은 돼 보였다. 지난 1월에 나와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은 어느덧 다 빠져나가고 나만 남아 있었다. 1년을 넘게 다닌 수강생분과 그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그림을 오래 그리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화를 나눴다.
잘 그리는 사람과 내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릴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내 방식대로 그리고 내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게 그려야 한다는 데도 같은 의견이었다.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갈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방식을 찾으며 재미있게 하다 보면 꾸준히 하게 되고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새로 시작한 분들이 오래도록 같이 하기를 바라면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