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요르단 암만에서 3일째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올드타운을 걸으면서 괜찮은 식당을 찾고 있었다. 요르단을 포함하여 중동 사람들 식사는 양고기, 요구르트, 빵(쿠브즈 아라비)이 기본이다. 얇고 납작한 빵을 맨손으로 집어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양고기 등을 싸 먹기도 한다. 콩으로 만든 길거리 요리도 많다. 콩을 삶은 후 으깨서 다른 야채와 섞어 기름에 튀기거나 한다.
자주 먹어서인지 느끼했다. 후식은 내 입맛에는 지나치게 달았다. 맛집이라고 해서 현지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팬케이크 식당도 그냥 지나쳤다. 이런 내 고민을 거리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들어주겠다고 했다. 좋은 식당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경계를 했지만 암만 시내 지리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그와 동행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시장 거리라 사람들도 많았다.
남자는 시장 골목을 벗어났다. 식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 남자, 영어를 썩 잘하지는 않았다. 식당이 이제는 '괜찮은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주택가 오르막을 올랐다. 언덕 위의 궁전 시타델로 향하고 있었다. 앞길이 아니라 한적한 뒷길이다. 내가 가늠해도 지름길이라는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아마도 남자가 넝쿨을 밟지만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넝쿨 가시가 스니커즈 천을 뚫고 남자의 발가락을 찔렀다. 그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신음을 뱉었다. 걱정이 된 나는 그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잠깐의 정적. 그게 문제였다. 궁전 뒷길은 군데군데 풀이 나 있는 마른 언덕이었다. Z자로 된 돌길이 위로 향했다. 한참 발아래에 건물이 있었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태양만 뜨겁게 달아올랐다. 겨우 머리만 그늘에 넣을 수 있는 작은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멈춰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그 남자가 수작을 걸기 시작한 것이.
먼저 손가락에 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입술이 예쁘다고 했다. 어깨를 끌어당기려고도 했다. 180cm 정도 키에 탄탄하고 날렵한 몸집, 부리부리한 눈과 매부리코. 남자의 신체 조건과 힘은 나를 제압하고도 남을 거였다. 하지만 그는 가시에 찔려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달렸을 때 어느 정도 속도를 낼까.
계산하면서 나는 그를 살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내가 달려야 할 언덕길을 보았다. 앞뒤 잴 필요는 없었다. 그를 간호할 의무는 내게 없었다. 그를 안심시키듯 돌아보면서 씩 웃어 주고는 냅다 달렸다.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그가 나를 뒤쫓아 오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봤을 뿐 뛰면서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믿는 것은 편한 신발을 신고 달리는 그 못지않게 튼튼한 내 다리였다.
요르단에서 있었던 일들
요르단은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다. 북쪽은 시리아, 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남쪽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을 뿐 국토 5분의 4가 사막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막을 지나야 한다.
어느 날은 지도에서 남동쪽인 카라크(Al Karak)로 향했다. 오래된 성채가 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였을까, 모래바람이 나를 반겼다. 온통 희뿌연 바람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차체도 흔들렸다. 비상등 켠 도요타 지프가 앞서 달려가지 않았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 불빛을 따라 모래 안개를 벗어났다.
달리다 보니 마르고 거대한 산이 내 앞에 있었다. 구불구불 오르막 도로를 액셀러레이터 밟는 발바닥 강도를 달리하며 '그야말로 구불구불' 올라갔다. 가드레일 아래가 낭떠러지인데도 그 풍경에 취했다. 낭떠러지 밑도 메마른 땅이고 그 아래아래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에 빛나는 모래 둔덕에 비현실적으로 진한 녹색을 발견한 것은 산 중턱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차를 멈췄다. 호수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지만 함께 환호성을 질러 줄 사람은 없었다. 차도 아주 띄엄띄엄 지나갔다. 특히 외곽에서는 차 구경하기가 더 힘들었다. 처음 공항에서 만난 우버 택시 기사 아멘이 내가 요르단을 떠날 때도 배웅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은 고작 유명한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로일 뿐인데 너는 방방곡곡을 다니더라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그럴까. 현지인들은 이방인인 여자 혼자서 운전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았다. 사막을 달리다가 마을로 들어설 때가 있었다. 마을 중심인 시장을 지나면 현지인들이 나를 향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그럴 때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모른 척해 버렸다. 이곳 시장도 이집트처럼 차와 사람이 뒤엉켰다. 끼어들기도 잘하고 클랙슨 소리도 빈번했다. 제법 넓은 도로로 빠져나오면 홍차를 파는 남자가 차 사이를 누볐다. 그는 신호가 걸렸을 때 길쭉한 주둥이가 있는 큰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정차된 차를 향해 찻잔을 들이밀었다.
손수 운전을 하다 보면 정해진 루트대로만 가는 관광과 달리 다양한 모습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그게 묘미이기도 하지만 간혹 여자 혼자일 때는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산 중턱에서 호수 사진을 찍고 돌아설 때였다. 현지인 남자들로 앞뒤 좌석을 꽉 메운 차가, 차창을 다 내리고는 나를 보았다. 그들 모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라 두 눈만 유난히 확대되었다. 그들이 내게 말을 걸면서 속도를 줄였다.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한 가지 상황에 몇 가지 결과가 나올 경우, 당황했을 때에는 제일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된다. 모른 척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웬걸, 요 남자들, 아주 천천히 운전하면서 내 진로를 방해한다. "에라, 요것들!"
마침 뒤에서 지프가 와서 내 차를 추월할 때 나도 액셀러레이터 밟은 발바닥에 힘을 주고는 그 차를 추월해 버렸다(다른 차가 있어야 그들이 딴짓을 못한다). 오르막길이었고 산 정상 부근을 막 지날 때였다. 그들이 탄 차는 오래된 자주색 기아 세피아였다. 딴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성능이 좋지 않아 오르막길에서 서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을 한참 떨어뜨려 놓고 나서야 달리 생각해 보았다.
현지 문화를 이해하는 일만큼 필요한 것
이렇듯 여자 혼자 여행을 하면 남자들에 비해 여러 힘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중동을 여행한다고 하면 십에 열은 모두 '미친 짓'이라고 한다. 위의 에피소드만 든다면 그렇다. 하지만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 상 잘 알고 있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고 24시간 정도를 가야 도착하는 이집트를 두 번이나 다녀온 이유도 좋은 사람을 그곳에서 만났기에 가능했다.
코로나 종식 후 늘어난 여행객의 안전을 우려해서인지 영국 BBC는 지난 3일(현지시간) 여성 혼자 여행해도 좋은 나라 5개국을 선정했다. 안전한 나라 '톱 5'에 슬로베니아, 르완다, 아랍에미리트(UAE), 일본, 노르웨이라고 5일 자 파이낸셜뉴스에서 전하고 있다.
장기간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는 나로서는 선정된 다섯 나라가 안전하다고 동의하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험은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서 구걸을 하는 남자(돈을 주지 않자 그가 무섭게 화를 냈다)에서부터 부다페스트 어느 숙소 휴게실에서 대마초를 피우던 유럽 남자, 뉴욕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그곳에서는 합법이다) 등.
문화와 자연환경이 다르기에 각각 그곳에 적용되는 안전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 늘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지키는 힘'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그 명심은 성별을 구별지을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다보면 성별이나 국적 및 나이 구분 없이 '여행자'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묶이기 때문이다. 여성 혼자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남성 홀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