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정도 된 옷은 버려야 하는 거 아닐까?"
온라인상에 떠도는 옷장 비우기 체크리스트를 보며 지인들과 우리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5년이라...' 곰곰이 제 옷장을 생각했습니다. 제 옷장 속에는 10살이 된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었던 패딩, 100일 사진 찍을 때 입었던 남방 등이 그대로 있습니다.
못 비우고 안 입는 옷이 아닙니다. 여전히 입고 다니는 옷입니다. 한 번 들어온 옷은 낡을 때까지 꾸준히 입습니다. 쓰임이 비슷한 옷을 중복 되게 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옷이 적은 편은 아닙니다. 10년이 넘게 의류회사에 다녔고 그곳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종종 저렴하게 샘플 판매를 하는데 그때 많은 옷들을 구매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은 소득이 낮은 나라로 수출됩니다. 그리고 중고 의류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옷들은 그 나라의 옷 산을 만들고 염소가 풀 대신 옷을 먹습니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하에 저렴하게 만들어지는 옷은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저렴하게 만들어집니다. 환경규제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옷을 만들며 생긴 오염수들이 하천과 강으로 버려집니다. 강을 생활 터전으로 살던 주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집니다.
의류의 생산과 소비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환경오염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쪽에서는 저렴하게 옷을 사고 입지도 않은 옷들이 쌓여갑니다. 또한 죄책감 없이 버려집니다. 그리고 그 속에 어떤 문제의식 없이 '옷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까?'와 '옷을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만들까?'를 고민했던 제 커리어가 맞닿아 있습니다.
의류의 생산과 소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고 구매를 고려하도록 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이 지구에 영향을 미칩니다', '파타고니아는 유행을 팔지 않습니다' 등의 캠페인을 벌이는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에서 일해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제 옷장을 바라봅니다. 환경을 생각하기보다 심플하게 살고 싶어 옷을 비웠고 옷이 이뻐 보이거나 내가 입으면 이쁠 것 같다는 이유로는 돈을 아끼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옷은 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옷장 속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쯤 된 옷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산 옷이 보입니다. 제가 옷을 비우고 구매하는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옷은 비우고 살 것.' 작년에 입었던 여름 티셔츠들의 목부분이 늘어지고 쭈글쭈글해져 버렸습니다. 대신 올 여름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산 스트라이프 반팔 티가 두 벌입니다.
만약 이 옷을 사기 전에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았다면 사지 않았을 겁니다. 목 부분이 쭈글쭈글해진 옷이 소득이 낮은 나라로 가서 그들의 생계와 생활 터전을 위협해서는 안 되니까요. 옷장을 다시 봅니다. 옷의 구매와 비움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에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