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 김희경이 6년 만에 내놓은 신간이다. 소위 정상가족이라고 불리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는 29.3%이고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33.4%로,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시각과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하다. 저자는 이런 고정관념에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매우 흥미로운 삶의 모델들과 만날 수 있으며, 이미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혹은 비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묘한 안도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징 솔로가 온다
이 책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기준을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아가기를 선택해 현재를 살고 있는 중년'으로 정하고 있다. 그들이 에이징 솔로이다.
'나이 듦'은 삶의 기본값이다.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홀로' 살아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책이다.
홀로 또는 함께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런 관점에서 결혼하지 않은 중년의 여성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질문과 의문이 쏟아진다.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결핍의 인생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소신 있게 자기주도적으로 살고 있는 에이징 솔로 여성이 많음에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 여전히 삐딱한 것인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수한 차별과 불합리함과 무시를 말없이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에게 사회가 비난을 넘어 화를 낸다는 느낌 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기득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책임 있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각자 이바지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매우 좋겠다.
에이징 솔로는 외롭다
'에이징 솔로는 외롭고 힘들 것이다'라는 담론의 배경에는 '고립'이라는 디폴트 값이 존재한다. 가족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당연시 여긴다. 함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의 강도가 혼자일 때 느끼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에 대한 정의와 느끼는 정도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혼자인 것을 '외로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연결되어 있으면서 혼자인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외로움은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얼마나 통하느냐 하는 질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81쪽)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 아플 때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한다. 돌봄 품앗이의 선순환, 돌봄의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에이징 솔로의 외로움에 대해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다른 모든 기혼자와 마찬가지로 에이징 솔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풍성한 삶을 살며 동시에 각자의 고난과 풀어야 할 과제들을 짊어지고 있다. 누구에게 권할 것도, 비난할 것도 아니고 그저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에이징 솔로가 유별나 보이지 않고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이루고 싶은 소망 중 하나다.(39쪽)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
에이징 솔로들이라고 해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관계를 거부할 뿐이다. 느슨하고 안전한 가족 바깥의 친밀함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의 친밀함을 여러 사람과 이어가면서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다. 사람마다 친밀함의 욕구가 전부 다르듯이 친밀함의 기준을 '가족'으로 한정 짓는 것 또한 편견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문화적 배경이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하고 만나면 유쾌한 기분이 드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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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나의 의식이 고양되었다고 느낄 만한 사람"과 영혼의 교감을 나누며 살아간다면 가족의 빈자리는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다양한 형태로 연결된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사는 삶이, 혼자 사는 사람의 생활에 어느 정도 안정감을 부여할 수도 있다.
독립과 소속, 자율과 연결, 벗어나기와 잇기, 양립 불가능한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품고 있는 갈망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다를 뿐, 에이징 솔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혼자만의 독립적인 삶에 대한 욕구만큼 친밀한 관계에 대한 열망도 크다. 그 관계가 무엇일지는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어떤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느냐, 어떤 기회를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 대상이 형제자매와 친척들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친구다. (139쪽)
에이징 솔로의 부모 돌봄
부모 돌봄은 비혼의 딸들이 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던 것이 사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혼은 남아도는 노동력처럼 인식되어 왔고, 결혼한 형제자매가 떠난 자리에서 온갖 집안 일과 부모 간병을 도맡아 오곤 했다.
돌봄은 누구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인데도 한 사람에게 책임이 집중되어 온 사례는 주위에 무수히 많다. 에이징 솔로와 가족의 관계는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려운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져 있는 셈이다.
무조건 피할 수도, 그렇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복잡한 관계의 영역이다. 부모 돌봄을 딸이든 아들이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누가 되었든 그 책임을 한 사람이 혼자 짊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생활을 일에 온통 헌납하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필요할 때 돌볼 수 있도록 일과 시간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취약하고 서로에게 기대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229쪽)
생의 마지막에 누가 나를 대리해 줄까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서 고독사가 느는 게 아니라 고립이 고독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비혼 여성 대다수는 친구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홀로 나이 들어갈 때도 사람을 지탱해 주는 것을 '관계'라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 원하는 관계의 밀도와 거리는 제각각이겠지만 말이다. 에이징 솔로가 배우자와 자녀 없이도 다양한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듯, 노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할 관계는 필요하다.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노년에 누군가의 돌봄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돌봄이 반드시 가족일 필요는 없다는 사회적 인식만 존재하면 된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나를 대리해 줄 사람, 나의 신상과 관련해 의사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가족에 한정되어 있다. 비혼 인구가 늘어나면서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제도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비혼에 대한 차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구조적 싱글리즘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에이징 솔로가 대수로울 것 없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일까. 여전히 비혼 여성에게 적대적이거나 차별적인 한국 사회의 태도와 관행을 생각해 보면, 혼자 사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솔로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여전히 가족 중심적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285쪽)
이상적인 에이징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또는 이 사회에 던져 주고 싶었던 화두는, '나이 듦은, 홀로이면서 함께일 때 이상적이다'라는 메시지이다. 우리 모두는 단독자로서의 영역을 지키되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나이 들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는 에이징 솔로의 삶을 관찰하고 분석해 보면서, 사람의 생활에 '경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관계'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구간에서는 솔로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범위가 삶의 전체가 될 수도 있고 삶에서 일부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흑백논리처럼 결혼 아니면 솔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아니면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맺은 친밀한 관계가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서로 돌볼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미래 가족의 모습이 되는 걸 보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에이징 솔로의 바람이기도 한)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결국 <에이징 솔로>는 "혼자 나이 드는 삶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고 바라본다면 에이징 솔로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 생애 전환, 친밀한 관계 맺기, 여러 층위의 연결망,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기 등을 다르게 실천하고 상상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로 귀결된다.
혼자 사는 삶을 '결혼과 가족'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다양성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또다른 형태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싱글리즘의 사전적 정의 :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들에게 편견을 갖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