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적도에서 북쪽으로 137km 떨어져 있다. 일 년 내내 덥고 습한 열대 우림 기후를 보이며 연평균 기온은 26°C-32°C, 연평균 습도는 80%이다. 월별 기온 차이는 대체로 없는 편인데 11월에서 3월까지의 몬순 기간에는 다른 달보다 기온이 조금 더 떨어져서 25°C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4월에서 5월까지 인터몬순 시기에는 기온과 상대습도가 높아 매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싱가포르 NEA 자료, Weather.com 자료 참고).

덥지 않냐고? 장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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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두어 달도 아니고 매일 더운 날씨가 지속되는데 싱가포르에서 사는 게 힘들지 않은지 내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싱가포르에 이사 오기 전까지는 날씨 때문에 사는 게 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싫어했고 나에게 있어서 여름은 늘 지치고 배탈이 잘 나서 조심해야 하는 힘든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18년 전 10월 중순 후끈한 바람과 열기로 나를 맞아 준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막연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날씨 때문에 너무 힘들지는 않은 것 같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내가 느끼는 좋은 점도 있다.

의류비 지출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좋다. 가벼운 소재의 여름옷은 겨울옷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 비싼 브랜드가 아니면 대략 10만 원 안팎으로 한 벌을 살 수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로 6월에서 7월까지 그레이트 싱가포르 세일 기간 동안 일 년치 입을 옷을 구매하는데 티셔츠, 바지, 원피스 등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몇 벌 사 두면 다음 해까지 옷을 사지 않아도 충분하다. 기존에 입던 옷들도 거의 유행을 타지 않으니 믹스 앤 매치를 해서 입으면 된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 큰아이 옷을 사서 실컷 입힌 후 작은아이에게까지 물려 입힐 수 있어서 옷값이 참 많이 절약되었다.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이 생겨서 좋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이곳에 와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쉽게 지치고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다 보니 감기에 자주 걸려서 체력을 다지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정원의 도시답게 집 근처 곳곳에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거나 조깅하기가 좋다. 더운 날씨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조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에는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며 뛰는 연세 드신 분들도 자주 보여서 내게 큰 자극이 된다. 나는 스쿼트와 덤벨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짧은 옷을 많이 입으니 아무래도 몸매에 신경을 쓰게 된다.

다양한 열대 과일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 다른 동남아 국가를 여행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열대 과일을 맛볼 기회가 없었다. 망고, 파파야, 용과, 코코넛, 구아바, 라임, 람부탄, 롱간, 스타푸르트, 망고스틴, 잭푸르트, 두리안, 포멜로, 패션푸르트 등과 같은 열대 과일을 이곳에서는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열대 과일은 대체로 달콤한 편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패션푸르트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더워서 불편한 점 또한 많다

불편한 점도 많다. 무엇보다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싱가포르는 어딜 가나 실내에 냉방이 잘 되어 있어서 실내외 온도 차가 크다. 냉방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햇볕이 강하고 햇살 속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피부에 검은 점이 잘 생기는데 모양이 좋지 않을 경우 피부암을 의심해 봐야 한다. 습한 날씨 때문에 아토피나 습진과 같은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강한 자외선은 눈에도 영향을 끼친다. 눈 흰자위에 노란 결절이 생기는 검열반도 흔한 질병 중 하나이다.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서 눈을 보호해야 한다.

청소를 자주 해야 한다. 에어컨을 켜지 않을 때는 창문을 열어 놓으니 집안에 외부에서 유입된 먼지가 쌓인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부직포로 바닥에 있는 먼지만이라도 닦아 줘야 한다. 에어컨 청소를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보통 3개월에 한 번 전문업체에 맡겨 에어컨 클리닝 서비스를 받는다. 습도가 높기 때문에 곰팡이가 잘 생긴다. 환기를 자주 하고 에어컨이나 제습기를 사용해서 습기를 제거해 줘야 한다. 옷장마다 제습제도 넣어 줘야 한다. 신발장에 넣어 둔 신발을 한동안 신지 않으면 구두 뒤축이 가루처럼 부서지거나 밑창이 쩍 하고 벌어진다.

요리하기가 힘들다. 싱가포르 아파트의 부엌은 대체로 거실과 분리되어 있는 폐쇄형 부엌이다. 요리할 때 나는 냄새나 연기를 차단할 수 있지만 부엌 내부가 상당히 덥고 답답하다. 싱가포르 전체 가구 중 1/6이 동남아시아에서 온 상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구조를 선호하는 것 같다. 나는 가스불 앞에 조금만 서 있어도 땀이 난다. 튀김을 하거나 국을 끓이고 나면 숨이 턱 막힌다. 한국 음식은 손이 많이 가니 요리를 다 하고 나면 지친다. 음식 또한 상하지 않도록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싱가포르에 정착한 초기에 날씨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비빔밥을 해 먹을 나물을 다 무쳐놓고 한나절 부엌에 그냥 뒀다가 모두 쉬어버려서 버리기도 했고 옷이나 가방에 곰팡이가 생겨서 버리기도 했다. 한동안 피부염 때문에도 고생을 했다. 살다 보니 이제 요령이 좀 생겼다. 어디든 다 적응하고 살게 마련인 것 같다.

요즘 날씨는 한국의 8월 초 날씨와 비슷하다. 오늘 낮 최고기온은 35°C, 체감온도는 39°C이다. 강렬하게 내리쬐던 햇볕은 어느새 사라지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높은 습도 때문에 피부가 이내 끈적거린다. 소나기는 금세 그칠 것이고 다시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여름 안에 다양한 여름을 품고 있는 나라 싱가포르에서의 삶도 이젠 밝고 화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