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전세사기 피해자의 사망 소식이 또다시 전해졌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피해 규모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입니다. 뒤늦게 정부·여당에선 피해자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피해자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채 지원 '문턱'이 지나치게 높거나 소극적인 지원에 머물러 확실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정부 대책의 '세금 투입'을 염려하며 '과잉대책'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올해 초 부동산 경기를 걱정하며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라'고 정부에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요구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건설 경기 불황엔 앞장섰지만, 서민 피해에는 신중함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LH 미분양 주택 매입, '혈세로 건설사 살렸다' 비판
지난해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 36가구를 79억 4,950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매일경제 <7조 들여 건설사 살리기?…LH,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1월 18일 이가람 기자)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부동산 "적체 물량이 해소되지 않자" 정부가 "공공기관의 주택도시기금까지 투입해 미분양 아파트를" 샀는데, "국민 혈세로 건설사 살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연합뉴스>(1월 30일)에 보도에 따르면, LH는 최초 분양가 기준 약 15%가 할인된 금액으로 평균 분양가보다 12% 낮은 금액에 매입했다고 항변했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는 안 산다"며 세금으로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일침을 가했는데요. 참여연대 역시 "수차례 미분양된 주택을 LH공사가 추가 할인 없이 매입하는 것은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경제, 미분양 해소 선제적 조치 주장하더니
하지만 당시 한국경제는 부동산 경기와 건설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요구했습니다. <사설/국토부 "주택기금으로 미분양 매입"…도덕적 해이 조장은 금물>(1월 17일)은 "'부실 건설사 특혜 구제'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한국 경제 연착륙을 위해 '주택시장 안정'이 필수라는 점에서 나무랄 수만 없는 선택"이라며 "집값 추락은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큰 후폭풍을 부를 휘발성 큰 이슈라는 점에서 가용 정책 수단의 총동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하고, "도덕적 해이 예방"은 기본이라면서도 "가계부채와 부동산경기 급락이 우리 경제의 뇌관인 만큼 더 신중하고 정교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한국경제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주장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LH가 미분양 아파트 사줬으면 하는데…" 건설사 날벼락>(3월 6일 김진수 기자)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 "평균 분양가 대비 12% 할인된 가격"이었지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한마디 하면서 "미분양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매입 임대 시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지난해 이후 전국 미분양 주택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LH가 "준공을 앞둔 아파트 단지 위주로 매입에 나서는 게 미분양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정부의 "고가 매입 논란과 관련된 '엄포'로" "LH가 지나치게 위축돼" 매입 임대 사업에 소극적으로 될까 걱정하는 업계의 우려를 전했습니다.
<미분양 해소 위해 한시적 '거래세'감소 카드 나오나>(3월 13일 김진수 기자)에서는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단기에 급증하면서 건설사의 부담"이 커진다며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거래세 감면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고 보도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분양이 '위험수위'를 넘어 건설사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다고까지 주장했는데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등 거래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선제적 대처와 "다양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업계의 주장을 거듭 부각했습니다. <"미분양 줄이려면 취득세·양도세 감면해야">(4월 10일 심은지 기자)에서도 "안정적인 주택 공급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맞춤형 세제 완화가 필요하"고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을 또다시 인용했습니다. 건설사 이익을 위해서는 수차례 같은 주장을 반복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엔 '피해자 관점만 봐선 곤란하다'?
반면, 한국경제는 전세사기 피해 대책에는 피해자가 아닌 재원 문제를 우선시하며 형평성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설/임대시장 초토화 '전세 사기극'…날림·과잉대책 모두 경계한다>(4월 21일)는 '전세 사기'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며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야당들은 '공공에서 임차인 보증금 우선 반환' '공공 매입' 등 재원 문제는 감안하지도 않은 설익은 지원 방안을 요구하며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 희생을 언급했지만, 재원 문제를 우선한 것인데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네 차례의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이 나왔음에도 비극적 사태가 이어진 사실을 정부는 엄중히 봐야 한다"며 "당장 피해자 구제와 긴급 지원, 유사 상황 방지 다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부가 여론에 쫓기며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세입자 우선매수권이나 세입자 채무상환 유예 등" 대책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만, "누가 어떤 돈을 댈지부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전세금 미상환을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 않"냐고 강변했는데요. 건설경기를 위해 미분양 물건을 세금으로 지원하고, 맞춤형 세제 완화까지 주장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입니다.
한국경제 기업 지분율 약 92%, 건설사 다수
전국언론노동조합 <보도자료/91.5%···기업이 가진 한국경제신문 지분>(2022/11/29)에 따르면, "국내 52개 기업이 한국경제신문 지분을 91.483%나 가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경제 지분을 가진 기업 중 '동아건설산업, 호반건설, 경남기업, 삼부토건, 동양, 금호건설' 등 건설기업도 다수 보이는데요. 한국경제가 기업의 입장에서 보도하고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도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민언련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새롭지 않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건설사의 어려움은 선제적 조치를 주장하던 한국경제가 전세사기 피해 희생자가 계속되는 상황인데도 '피해자 관점으로만 봐서 곤란하다'며 신중론을 주문하는 걸 보니, 기업만이 한국경제의 독자인지 개탄스럽습니다.
KBS <피해자들이 보는 정부 대책은?>(4월 23일)는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보증금을 "혈세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인 "국가 대납은 안"되며, 그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의 발언에 안상미 위원장은 "은행의 부실채권, 정부가 세금으로 다 사고 있"고, "건설사 미분양 아파트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데, 대기업이나 금융권에는 "정부가 세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면서 왜 이 피해자들에게"는 "세금이 들어가면 안"되느냐고 되물었는데요. 안 위원장은 "제도적으로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안 위원장은 전세 사기범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부실 대출을 눈감은 은행권과 잘못된 정책을 방관한 정부의 책임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적합한 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원활한 소통을 요청했습니다.
미흡한 정부 대책, 왜 피해자에게 세금 지원 안 되나?
정부는 4월 27일 <범부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에 우선매수권 주고 경매자금 전액 대출>(4월 27일 박초롱 기자)는 "야권과 피해자들이 요구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등 보증금 직접 지원 방안은 배제됐"으며 "집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깡통전세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라고 짚었습니다. 한겨레 <전세사기 피해자들 "지원대상 걸러내는 특별법…보여주기식" 반발>(4월 27일 곽진산 기자)는 소극적인 정부 대책에 실망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보도했는데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대책위)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 지적하고 "채권매입방안이 빠졌"으며 "추상적인 기준 때문에 피해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전세제도나 도시주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지만, 어렵게 마련한 전세 자금을 잃고 낙담한 채 생사를 오가고 있는 국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도울 수 있는 것도, 도와야만 하는 것도 정부입니다. 언론은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만 봐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구제에 나서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언론이 국민을 위해 앞장설 때 언론의 효용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1월 1일~4월 2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에서 전세사기, 미분양 관련 보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