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만들기라는 모토로 인생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기이유 학교(아래 자유학교)는 4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한 달간의 여정으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보세이 폴케호이스콜레에 와 있습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는 1800년대 민중의 자각을 중요시했던 시기에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변화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덴마크 사회에는 그때의 교육 철학과 실천이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궁금했습니다.
2016년에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처음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 경험을 말과 글로 나누는 데 한계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현재 머무는 학교는 보세이 폴케호이스콜레로 한국문화, 일본문화를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 또 다른 큰 주제는 다양한 체육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점 역시 이전에 경험했던 학교와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 차이를 느낄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2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덴마크의 교육 철학과 실천이 다른 학교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육 철학과 실천
폴케호이스콜레의 주요한 교육적 목표는 삶의 깨달음(life enlightenment), 대중 교육(public education), 민주 교육(democratic education)입니다. 이러한 교육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교육 환경과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비형식 교육(Non-formal education)을 중심으로 한 폴케호이스콜레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자유입니다.
고정된 커리큘럼이 없고, 성적, 시험이 없습니다. 이는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다루는 법에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폴케호이스콜레에는 교육 방식을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고, 개별 학교의 핵심 가치와 폴케호이스콜레의 주요 목표에 기초하여 교육 과정과 활동의 내용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주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사들은 자신이 교육하고 싶은 것을 교육하고,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육론(Pedagogy) 및 교육 실천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경험이 풍부한 삶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이야기할 때 '삶을 위한 학교'라는 설명으로 한국에서는 '인생학교'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쉽게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2016년에 처음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를 경험했을 때 형식교육에 익숙한 저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바로 이 '비형식 교육'과 학교 현장에서의 '자유'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다시금 여러 선생님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수업 중에 롤 플레잉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반 학교에서 교육자로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지금 폴케호이스콜레에서의 일에 더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해야 할 수업과 내용들이 정해져 있는 반면, 이곳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수업을 개설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역사를 전공했는데, 이곳에서 사무라이 영화(Samurai Movies), 던젼 앤 드래곤(Dungeons & Dragons), 판타지룸과 복도 꾸미기(Designing Fantasy Room & Hallways), 모델링(Modelling), 롤플레잉(Role playing) 수업을 맡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 '자유'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학생들이 누리는 '자유'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판타지룸과 복도 꾸미기(Designing Fantasy Room & Hallways)라는 수업은 판타지룸과 교내 도서관이 있는 공간에 벽을 꾸미는 과정입니다. 딱 한 가지 제약사항이 있다면 공간을 꾸미는 데 들어가는 소재는 화재 예방을 위해서 미리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육 실천은 학생들이 구체적, 실질적, 경험적인 삶을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은 특정 과목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지만, 교육의 주요 목적은 특정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기를 다루는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매주 다른 악기를 아주 간단한 코드를 통해서 한 곡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기타로 시작해서 피아노, 베이스. 이렇게 어느 정도 합주 구성이 완성된 다음에는 한 곡을 합주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한국에서의 여느 음악 수업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수준까지 최대한 빠르게 잘 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고, 악기를 통해서 음악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위나 좋은 성적을 받아서 상위학교에 진학하는데, 혹은 직업을 구하는 데 활용할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관심과 즐거움으로 과목을 선택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사와 참여하는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또 하나의 독특한 교육 환경을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의 일상
폴케호이스콜레는 기숙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의 하루 시작은 8시에 있는 아침 식사입니다. 식사당번(Kitchen duty)를 하는 친구들이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음식을 가지런히 준비해 둡니다. 아침은 30분 정도로 짧게 하는데 잠을 선택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수업 일정은 9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수업은 1시간 30분 정도입니다. 각자의 시간표에 따라서 수업을 참석하는데 오전에 2개 오후에 2개 정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는 그룹별로 맡은 청소 구역을 청소합니다.
점심시간도 30분 정도이고, 점심을 먹고 나면 학생들 전체가 모임(assembly)을 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다른 학교에서는 아침에 모임(morning assembly)를 했는데, 이곳은 점심시간 후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모임은 함께 부르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모임에서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의 짧은 프리젠이션이 있기도 하고, 학교 안에 구성원들이 나누어야 할 주제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지사항 등을 이야기하는 순서를 가집니다. 자리를 마무리 할 때도 노래를 합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조직한 클럽 활동들이 있기도 하고, 저녁 식사 뒤에는 요일별로 강연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여유로운 시간으로 학생들이 모이는 가든룸이나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갖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체로 비슷한 일정이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식사하는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롭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파티 일정이 있는데 학생들이 조직한 음악 퀴즈가 있기도 하고 학생들이 운영하는 바에서 술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작은 커뮤니티이다 보니 모든 것들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식사 시간 중간에는 모두에게 알릴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경우 내용을 공유하고 식사를 준비한 사람들을 위해서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두 번째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의 경험으로부터
16년에 경험했던 것처럼 삶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 살아있는 언어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함께함(togetherness)을 강조하는 환경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는 학교마다 공통된 교육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300여 개의 폴케호이스콜레가 있었고, 지금은 인구 약 590만에 80여 개의 폴케호이스콜레가 덴마크 전역의 공동체에 퍼져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과 '학교'라는 렌즈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바라보면서 분석하고 한국에 접목하려고 했다면, 이번 경험을 통해서는 '교육'을 넘어서 '문화'라는 렌즈로 폴케호이스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기와 학기 중간에 가족과 노인들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분도 그렇고 학교 시설이나 행사를 지역의 공동체와 함께 공유하는 점도 '문화'라는 렌즈로 보았을 때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가 교육부에서 문화부로 소관 부서를 옮겨온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적인 효과를 평가받아야 할 때 교육 철학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했습니다.
시간을 선물해 주는 사회, 여유를 마련해 주는 문화. 그것이 이번 여행에서 한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그 무엇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다면 계절과 계절 사이를 이어주는 시간을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