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 특히 오이 냄새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난감할 때가 있다.
냉면이나 비빔국수, 짜장면에 고명으로 올라가는 오이는 무조건 빼서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준다. 가끔 주문을 할 때 미리 오이를 빼달라고도 한다. 하지만 열의 아홉은 안 빼준다. 특히 배달앱으로 오이를 빼달라고 요청을 해도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굳이 리뷰를 남기지는 않지만 배달된 산더미(?) 같은 오이를 볼 때면 한숨만 나온다.
누군가는 '그냥 오이를 빼고 먹으면 되잖아?'라고 한다. 물론 그렇게 먹는다. 하지만 맛보다 더 싫은 게 오이 냄새라서 매번 맛있게 먹지는 못한다.
가장 힘든 메뉴가 김밥이다. 김밥을 주문할 때는 오이가 들어갔냐고 꼭 묻고 만약 넣었다면 아예 먹지 않는다. 가끔 오이를 빼달라고 했지만 들어있을 때가 있다. 왜 오이를 넣느냐고 하면 몸에 좋으니 그냥 먹으라고 한다. 나에게는 땅콩 알레르기 있는 사람에게 땅콩이 몸에 좋다고 먹으라는 것과 같다.
제일 황당한 것은 그냥 빼고 먹으면 되지 왜 유별나게 구느냐는 핀잔이다 고명 위에 올라간 오이와 다르게 김밥에 들어간 오이 냄새는 밥과 다른 속 재료에 이미 배어 있어 먹기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오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나 샐러드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피클이 들어간 햄버거는 꾸여 꾸여 먹어도 생오이가 들어간 햄버거는 안 먹는다.
오이 냄새에 민감하다 보니 오이 비누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군대에서 오이 비누가 보급품으로 나와 어쩔 수 없이 사용했는데 하루 종일 얼굴에서 오이 냄새가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오싫모'에 '오밍아웃'까지... 제발, 부탁드립니다
군대 제대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보니 'Cucumber Haters'라고 오이를 안 먹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학계에서는 '오이 알코올(cucumber alcohol)'이라는 특유의 향이 거부감을 유발한다고 하거나 유전 인자 때문에 오이를 싫어한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어떤 이유인지 모른다. 오이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겠다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는 없잖은가.
SNS가 발달되면서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만들어지고 오밍아웃(오이+커밍아웃)도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오이를 싫어하거나 못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식당 사장님들! 힘들고 귀찮아도 오이 빼달라면 빼주세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오이가 들어가면 보기도 싫어집니다. 몸에 좋은 인삼도 안 받는 사람이 있듯이 오이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제발, 꼭, 무조건 오이 빼주세요."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