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희생된 민간인들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충남 서산 갈산 방공호 유해 발굴 작업이 15일 본격 시작됐다.
유해 발굴 첫날인 이날 작업은 포클레인으로 표토층의 일부를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유족들에 따르면, 매장지의 흙을 살짝만 걷어냈을 뿐인데도 희생자들의 유골과 고무신 등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나왔다.
현장을 참관한 황창순 서산 유족대표는 "오전 9시 30분 쯤, 포클레인으로 땅을 40cm 정도 파 내려갔을 때 유골과 고무신이 나왔다"며 "오전에 네 곳을 팠다. 정강이뼈와 두개골도 나왔다. 대부분 서른 살도 안 된 젊은이들일 것이다"라고 전했다.
황 대표는 "국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태산 같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유족들은 부역혐의의 누명을 쓰고 평생을 고생했다. 여전히 사면 복권이 안된 경우도 많다"며 "하루 빨리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지금도 빨갱이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복권이 돼서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에 따르면 유해 발굴 작업은 크게 ▲표토제거 ▲구획 설정, ▲유해 노출 ▲유해 수습 ▲원상 복구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유해 발굴 작업과 관련해 진화위 관계자는 "이번 경우에 (표토작업 중에) 인골이 나와서 시굴은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흙을 제토하면서 유해와 유품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노출이 끝나면 유해를 수습하게 된다. 사진기록과 평판(도면)작업 등을 진행한 뒤 유해를 수습하고 현장을 원상복구해 마무리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유해가 노출되면 현장 작업과 별도로 육안 감식을 하게 된다. 육안으로 성별과 연령대, 신체적특징 등을 살핀다"며 "확인할 수 있는 경우 사망 당시의 총상 등이나 흔적을 찾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화위에 따르면 서산 갈산방공호 매장지에는 지난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희생된 서산지역 민간인들이 묻혀 있다. 매장된 추정 희생자는 최소 18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인민군에게 부역한 혐의 혹은 혐의자 가족이란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