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북단이자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 오지 강원도 인제. 그래서 '하늘 내린 인제'는 산새의 고장이자 야생동물의 고장이다. 산이 깊어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야생동물을 쫓아 이곳 인제에 2019년부터 터를 잡은 이가 있다. 바로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이다.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는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소장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야생동물을 통합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이"라고 설명했다. 야생동물도 전공에 따라 다양한 계통으로 나뉘는데, 그 모든 야생동물들을 두루 접하고 '통섭'한 이가 바로 한상훈 소장이라는 설명이다.
한 소장이 오는 23일 창립하는 '한국수달네트워크' 초대 공동대표로 추대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자연'을 느끼러 떠난 길
그는 벌써 4년째 인제에 머물며 야생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13일 '소리로 만나는 산새 투어'를 통해 그와 함께 인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봤다(관련 기사 :
새벽 산새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교감하는 이들 https://omn.kr/23x3e).
'산새 투어'를 마친 다음날 좀 더 다양한 인제의 야생을 접하고자 그를 따라 길을 나섰다. 인제는 군인들의 도시이기도 한데, 군부대의 훈련터를 만들기 위해 몇 개의 마을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그곳엔 거대한 군사훈련장이 마련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떠난 그곳의 자연은 되살아났다.
그 '대자연'을 느끼러 한 소장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우선 '갑둔리 5층 석탑'이 있는 숲을 찾았다. 차를 내려 숲에 들어서자 오래된 숲 특유의 냄새가 났다. 소나무 일색의 우리네 야산과 달리 다양한 식생의 나무들이 즐비했다. 다양한 나무들의 향이 모여서 오래된 숲의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무뿐만이 아니다. 그곳엔 산양부터 노루,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삵, 멧돼지, 담비 등 다양한 야생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한 소장은 무인센터카메라를 설치해 몇 해 동안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들이 다니는 길목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의 열쇠 '똥'
우리는 그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 흔적을 쫓았다. 그 흔적은 주로 발자국과 배설물이다. 깊은 숲에서는 발자국이 잘 보이지 않기에 주로 배설물을 찾게 된다. 그들의 똥이 바로 길이요, 야생의 열쇠인 것이다.
함께 그의 뒤를 따라 숲을 들어가 '똥'을 살핀다. 노루와 산양 똥이 곳곳에 널렸다. 그런데 똥이 다 비슷하다. 우리가 봐서는 전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소장은 오랜 야생의 경험으로 두 똥을 잘도 구분해냈다.
그는 "노루는 이동하며 똥을 싸기 때문에 주변 곳곳에 조금씩 흩어져 있는 반면 산양은 한 자리서 한꺼번에 배설하기 때문에 무더기를 이룬다. 그리고 산양 똥은 끝이 꼭지 모양"이라면서 두 똥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설명을 듣고 보니 두 똥이 다르게 보였다. 그러자 똥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일행은 서로 앞다투어 두 똥을 곱게 나누어 담았다.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만난 듯.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곳곳에서 만나는 똥이 구분되면서 이곳은 노루의 길이요, 저곳은 산양의 길이 된다. 그 길을 따라 우리는 산양이 되기도 하고, 노루 궁뎅이가 되기도 하면서 산을 탔다. 즐거운 경험이자 귀한 체험이었다.
'비밀의 정원'이 된 이유
귀한 똥을 뒤로 하고 한 소장은 우리 일행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안내했다. 일명 '비밀의 정원'이다. 인제 현지인들도 잘 몰라 찾지 않는 곳이라 한다. 마을 사람이 떠난 곳은 숲이 됐고 울창한 숲은 비밀의 정원이 됐다.
그곳은 군사 훈련지역이라 접근이 불가하다. 그래서 도로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멀리 떨어져 바라봤지만, 느낌이 달랐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 그래서 비밀의 정원일 것이다.
사람의 접근이 불가하니 신이 난 건 산새들이다. 때마침 물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들어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박새 한 마리도 날아와 노래한다. 그 순간은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들의 자유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비밀의 정원을 지척에 두고도 들어가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래서 이 숲이 보전되고 있으리다. 바라만 보는 숲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사람의 접근이 허용된다면 이곳은 온전히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고, 비밀의 정원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도 즐거운 이유다.
일행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목적지는 숲이 아닌 강이었다. 인제는 첩첩산중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강의 고장이기도 하다. 설악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두 하천을 간직한 곳이다. 그 하나가 내린천이요, 나머지 하나가 소양강이다.
소양강 협곡의 아름다움과 소양강댐
소양댐으로 물길이 막히기 전의, 펄펄 살아 흐르는 협곡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인제의 소양강이다. 그곳에서 맑고도 시린 소양강을 만났다.
도처에 호박돌이 즐비하고 그 사이로 맑고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간다. 신발을 벗고 물길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길 속에 서서 강을 바라본다. 차고 맑은 강물이 두 발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그 소리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된다.
한참을 강 속에서 강과 하나가 되어 저 멀리 산을 바라봤다. 전날 걸었던 그 산이다. 그 산길에서 바라보던 소양강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 강에 꼭 들어가야겠다고 전날 생각했는데, 이날 그대로 실행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도 야생의 흔적은 목격됐다. 큰 호박돌에 수달의 똥이 남겨져 있던 것. 이 맑고도 아름다운 강에서 살아가는 수달은 얼마나 행복할까 잠시 생각해본다. 금호강의 수달과 너무나 비교가 됐다.
인간들을 피해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녀석들과 대자연의 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녀석들의 처지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똥의 모양도 참 이쁘다.
한참을 강 속에 있다가 나와서 드론을 띄웠다. 협곡 전체를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대는 적중했다. 하늘에서 본 협곡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강과 낙동강의 그 협곡이 고스란히 그곳에 들어차 있었다. 아니 더 아름다웠다. 생생히 살아있는 숲과 펄펄 살아 흐르는 강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아름다운 물길이 6㎞ 아래서 소양강댐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그곳은 강의 무덤이다. 어떠한 '야생'도 깃들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소양호가 인제에서부터 양구를 거쳐 춘천까지 이어진다. 강의 무덤이 그렇게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물을 수도권 사람들이 쓰고 마신다. 만약 소양강댐이 없었더라면 그 아름다운 협곡이 들려주는 무수한 이야기를 우리는 접하게 될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그 비밀의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소양강댐을 비롯한 전국 댐의 한 컵의 물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아름다운 협곡과 야생과 이야기를 '수몰'시키고 얻은 물이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힘
한상훈 소장으로부터 너무 귀한 선물을 받았다. 야생의 신비와 비밀의 정원, 그리고 소양강의 아름다움까지, 바로 대자연이라는 선물을 말이다. 강원도 인제에 가면 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인제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일 테다. 이것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 아닐까.
곧 다시 그 강원도의 힘을 느끼러, 야생의 신비를 만나러 인제를 찾을 것 같다. 그때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나눠야 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