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망울이 유난히 큰 검정개, 애교스러운 바둑이, 재롱둥이 흰둥이, 황색 털에 코와 발만 하얀 녀석, 영락없는 완구 모양의 털을 지닌 누렁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귀여운 잿빛 강아지들, 머리털이 눈을 가린 삽사리 등 모두 스물여섯 마리의 개가 등장하는 그림책 <개의 입장>(박자울·황동진 지음, 작가정신)이 며칠 전 배달됐다.
털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개들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특히 우수에 찬 커다란 눈망울의 개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에 다가와 들고 있던 책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안락사 당하는 개들
이 녀석일까? 아니면 저 녀석일까?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을 처음부터 다시 샅샅이 훑어보았다. 실물 강아지라도 만난 듯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느새 50여 년 전에 키우던 해피를 그림책에서 찾고 있었다. 이웃집에서 자매처럼 지내던 친구가 대도시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를 나에게 맡기고 떠났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해피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우리집에 맡기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친구는 그로부터 5년 뒤 그 녀석이 노쇠하여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나와도 몹시 정이 들었던 해피가 죽던 날, 나의 연락을 받은 친구는 부리나케 달려와 함께 우리집 뒷산 양지바른 곳에 해피를 묻어주었다. 이후 나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다신 키우지 않았다. 이별의 아픔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의 입장>은 버려진 개들의 이야기다. "쫓겨난 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람도 그렇잖아? 갈 곳 없는 개는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며 거리를 떠돌아다니거나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 이런 개를 보면 사람들은 지저분하다고 싫어해. 붙잡히면 보호소로 가게 돼." 이 책은 그냥 버려진 개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책 제목처럼 '버려진 개의 입장'에서 쓴 독특한 관점의 책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이곳을 나갔어. 나도 나갈 수 있을까? 섭섭하기도, 부럽기도 하고 허전해." - 나도 가고 싶다
"비가 많이 와서 그나마 흐릿하게 남아 있던 집 냄새도 없어졌어. 배도 고프고 길에서 자는 것도 무서운데, 함께 살던 가족 생각만 자꾸 나. 내가 뭘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스물여섯 꼭지의 글들은 하나같이 시(詩) 같기도 하고, 철학자의 독백 같기도 하다. 길지 않고 짧은 글이지만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한 개의 그림과 글이 하나의 완벽한 조합을 이뤄 읽는 내내 편안하다. 유기견들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버려진 개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반려자'라는 말처럼 사람에게만 쓰던 반려(伴侶)라는 말을 붙여 '반려견'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지만 버려지는 반려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통계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 조사(2021)에 따르면 2021년 한 해만 새로 등록된 반려견이 5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하여 보호하고 있는 유기 동물은 12만 마리에 이르며 이 가운데 유기견이 71퍼센트를 차지하여 8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주인이 버린 동물들의 운명은 운 좋게 입양되는 예도 있지만 대개는 안락사의 길을 걷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개의 입장>을 쓴 박자울 작가(그림)와 황동진 작가(글)는 오래도록 개를 아끼고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현재 박자울 작가와 동고동락하는 반려견 '치림'도 유기견 보호소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작가들의 바람은 딱 한 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반려동물이 서로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조화로운 세상, 버려지는 반려동물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기를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다음은 박자울 작가(그림)와 황동진 작가(글)의 대담이다.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다
- 유기견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지 오래다. 유기견에 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황동진 작가(아래 황): "유기견들이 일정 기간 안에 새 가족에게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작가로서 유기견이 적절한 보호를 받고 다시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책속에서 말하고 싶었다. 수많은 유기 동물을 몇몇 사람이 책임지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박자울 작가(아래 박): "거리에서 흠칫하고 도망가거나 기죽은 개나 고양이를 보면 저 녀석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하고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보니 유기견의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어른이 된 내가 유기견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황 : "어린이가 자기보다 작고 힘없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오늘날 그림책은 '0살부터 100살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전 세대가 즐기는 문학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어른은 물론 앞으로 커나갈 자녀들에게도 이 그림책을 권하여 유기동물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다."
박 : "현실적으로 보면 유기동물 없는 사회를 만드는 작업은 주로 어른들이지만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커서 그러한 어른들의 뜻을 이어받는 세대로 성장하길 바란다. 글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특히 '그림 속 개들의 눈을 자세히 보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말하는지'를 읽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 반려견을 집에 들이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것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본다. 어른들이 반려견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황 : "유기견이 늘어나는 것은 지금은 쓰지 않는 애완견, 애완동물이라고 하던 시대의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애완(愛玩)이란 '희롱하며 가지고 논다'라는 뜻이므로 '반려동물'에 걸맞은 가족 의식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살아 숨 쉬는 존재에 대한 숭고한 마음을 잃지 않고 늙고 병들었을 때도 가족처럼 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 : "가족의 형태나 구성이 다양해지는 사회로 변해가는 만큼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 사람들을 제도 안에서 책임도 무겁게 하고 보호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그런 울타리가 견고해지면 의식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 유기견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작가로서의 의견은 무엇인가?
황 :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반려동물은 돈으로 사면 그만'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유기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여러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사지 않고 입양하기'를 실천하는 데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 : "시급한 문제는 법적, 제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겠지만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책이나 홍보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힘도 중요하다고 본다. 유기견에 대한 문화적', '문학적' 접근이야 말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이 분야에 작가들이 발을 벗고 나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