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심사 점수를 보고 받은 뒤 "미치겠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명시한 검찰 공소장이 형사소송법 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공소사실과는 관련 없는 사실을 적어 판사에게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TV조선 재승인 심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2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주장한 한 위원장의 주요 혐의는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재승인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국회 등에 제출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지난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한 위원장이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면서 했다는 발언들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점수를 보고받은 한 위원장이 "미치겠네, 그래서요", "시끄러워지겠네, 욕을 좀 먹겠네"라고 했다는 것. 지난 15일 쏟아져 나온 언론의 보도들도 한 위원장 '공소사실'보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에 무게가 실렸다.
검찰 "한상혁, TV조선 재승인 기준 넘자 '미치겠네'" <연합뉴스>
TV조선 재승인 점수 높게 나오자, 한상혁 방통위원장 "미치겠네" <조선일보>
TV조선 높은 점수 받자, 한상혁 "미치겠네"…檢 공소장 보니 <중앙일보>
그러나 이 발언은 검찰이 한 위원장에 제기한 공소사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점수 수정을 요구했다'고 의심해 수개월간 수사를 이어갔지만, 공소장에는 '점수수정 개입'과 관련된 혐의는 담기지 않았다.
한 위원장 측은 검찰이 공소장에 쓴 발언조차 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한겨레>는 "한 위원장 변호인이 '그런 일들이 없었다는 것을 세세하게 의견서에 담아 재판부에 이미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선 한 위원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인 '공소장 일본주의'는 혐의 사실 이외에 사실을 적어 재판부에 피고인이 유죄일 것 같다는 심증을 갖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9년 문국현 당시 창조한국당 대표에 대한 상고심을 선고하면서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 공소제기라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공소장은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 사실만을 간략히 쓰는 것이 기본인데, 한 위원장 발언을 마치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듯이 적어 공소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기재했다"면서 "이렇게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내용까지 자세하게 공소장에 적시할 경우, 판사로 하여금 부정적인 예단을 갖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한 위원장의 발언은 혐의 사실의 배경으로 봐도 아주 미약한 내용"이라며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내용은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려는 판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이고, 공소장 일본주의에 명백하게 반하는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