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지난 12일 <日 "'법의 지배'에 대해 연설해 달라"… G7 앞두고 윤 대통령에게 요청>를 통해 "일본이 19~21일 히로시마에서 주최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법의 지배(rule of law)'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를 주제로 연설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이 윤 대통령에게 법의 지배라는 주제로 연설을 요청한 것은 최근 급속히 진전된 한일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도 전했다.
그런데 기사를 아무리 상세히 읽어봐도 핵심 내용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없었다. 기사는 "11일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번 G7 정상회담 확대회의에서 '법의 지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질서 유지'와 관련해 연설한다"고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을 거론했으나, 한일외교 소식통이 '일본이 윤 대통령에게 법의 지배와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를 연설해 달라고 요청했다고'는 쓰지 않았다.
필자는 일본 측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런 요청을 실제로 했다면 그 사실이 분명 일본 언론에도 실렸을 것이라고 생각해 현지 일본 언론을 살펴보았으나, 같은 내용의 뉴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국 지국에 나와 있는 일본인 기자에게도 해당 보도에 대해 물어봤으나, 그 또한 <한국일보>의 기사는 봤지만 일본에서 그런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본대사관의 언론담당자에게도 연락해서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외교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외교당국 간에서 오간 이야기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지국 일본 기자도, 일본 언론들도, 일본대사관 언론담당자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알게된 것일까?
사실 기사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은 기시다 총리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한국 대통령에게 부탁했다는 '비상식적'인 부분이다. 기시다 총리 본인이 말해도 될 것을 다른 나라 정상에게 부탁한다는 것인데, 외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건 다른 나라 정상의 발언이라는 주권 행위에 타국이 간섭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결례다.
해당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여가 흘렀고, 19일 G7 정상회의가 히로시마에서 개막했다. <한국일보>의 보도가 현실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한국의 주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므로 사실관계가 명확히 파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종대학교 대우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