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3시, 전북 군산시 옥서면 하제마을에서는 600년된 팽나무를 지키기위한 '팽팽문화제'가 열렸다. 시인이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인 정용국 시인의 사회로 시작된 문화제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인 이승철 시인이 연출을 맡았고 전국에서 5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경기작가회의, 광주전남작가회의, 광주평화포럼, 전북작가회의와 뉴스서천이 후원했다. 첫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선 강형철 시인이 입을 열었다.
"오늘의 행사는 600년 동안 이 나라를 지켜본 팽나무를 지키기 위한 행사입니다. 이곳은 3000명의 주민이 살았던 마을입니다. 비록 주민들은 쫒겨났지만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해 이 팽나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팽나무를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문학하시는 분들에게 영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문을 연 문규현 신부의 인사말에 이어 민중춤꾼이자 (전) 한양대 무용과 교수인 장순향 교수가 상생평화 해원춤을 추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31회째 계속되고 있는 '평화바람'의 '팽팽문화제'...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에 있는 미군기지는 유독 서해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서해안을 기지화 한 미군의 전략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택-군산-성주-제주로 이어지는 미군기지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군사기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자연, 바위와 갯벌을 파괴하며 계속 확장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는 미국 육군의 단일 해외 주둔지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군산공군기지 역시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가미카제 비행장으로 쓰던 것을 광복 이후 주한미군이 이어받아 운영했다. 2000년대 이후 기지가 확장되면서 옥서면의 대부분 마을이 사라졌다.
처음 3만 평이었던 기지가 300만 평 이상 커졌다. '군산미군기지 우리땅찾기 시민모임'은 20년 가까이 수요집회를 하며 기지감시 운동을 하고 있다. '평화바람'은 옥서면 하제 마을의 팽나무를 지키기 위한 '팽팽문화제' 등 평화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7월 '평화바람'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시민과 연결하는 박물관, 평화운동을 기억 기록하고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박물관, 평화라는 가치를 전시하고 확산하는 박물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세계 민중과 연대하는 박물관이라는 비전으로 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에 군산평화박물관(관장 문정현)을 열었다.
군산미군기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훈련을 했던 다치아라이 비행학교에서 시작돼 현재는 군산시 옥서면(20.88㎢)의 61.47%를 차지하고 있다. 군산미군기지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하제마을'과 팽나무 이야기를 빼놓을 수없다.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해송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마을인 상제-중제-하제. 일제강점기 시대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상제와 중제 일부가 없어졌고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중제가 없어졌다. 2001년 탄약고 안전지역권 확보 강제토지수용으로 하제마을까지 사라져 현재 두 가구만 남았다.
주민 모두가 떠난 곳을 600년 팽나무가 지키고 있다. 그런데 2020년 국방부가 하제마을 일원의 탄약고 안전지역권 201만 ㎡를 미군에 공여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모임과 하제 팽나무지키기 모임은 '하제마을 미군기지 공여계획 철회' 기자회견을 열었고 같은해 10월부터 '난리법석' 프로젝트팀이 기획한 '팽팽문화제'가 팽나무 아래에서 매달 열리기 시작했다.
2021년 3월에는 향토연구가 양광희씨가 펴낸 팽나무와 하제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한 책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이야기>가 발간됐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 6월 25일에는 팽나무가 전라북도 도지정문화재(전라북도 기념물 제148호)로 지정 고시되기도 했다. 현재 팽나무를 천연기념물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장순향 교수의 상생평화 해원춤에 이은 순서는 평화시 낭송 차례다. 홍일선, 김이하, 이효복, 최자웅 시인의 시낭송에 이은 민중가수의 <평화의 노래>가 불리자 동참했던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평화시 낭송 두 번째 차례도 시인들의 무대였다. 이재무, 김여옥, 고희림, 채영숙, 고은혜에 이어 시인이자 평화협정운동본부 상임대표인 이적 시인의 시가 낭송됐다. 평화의 노래 2부는 노래하는 신부이자 시인인 최자웅 신부 차례다. 시낭송 3부 마지막 순서는 '신단수 팽나무'를 노래한 이민숙 시인의 차례다.
미군 경비병의 조준사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하제마을 주민 여정진
행사장 인근에서 베레모를 쓴채 구경하고 있는 하제마을 출신 여정진(71)씨를 만나 마을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여씨 집성촌이었던 하제마을에는 동창생이 30명이 넘었다고 한 그가 마을 내력을 이야기했다.
"바닷가에서 조개가 많이 잡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왔어요. 마을에 이발소가 4개, 미장원과 양복점, 구멍가게도 많았었죠. 강아지도 5000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전해졌고 배가 300여 척 정도나 됐었습니다"
여정진씨는 5살 무렵에 아버지를 잃었다. 미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이 살았던 고향집이 있었던 현장을 가리키며 아버지를 잃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삼거리에서 차에서 내려 하제까지 걸어오다 보면 멀잖아요. 아버지는 거기서 약주 한잔하시고 오다가 미군과 시비가 붙었고 미군이 조준사격을 해 사망했어요. 미군 경비병은 부대 안으로 끌고 가려고 했고 주민들은 안 뺏기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순간 순경이 오면서 상황이 일단락 됐다고 해요.
여씨들이 나서서 울음바다가 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이 어려워져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전쟁상황도 아닌데 비무장 민간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문정현 신부 차례였다.
"저는 1997년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 병이 생겼습니다. 하제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미군기지에 최신식 격납고가 들어섰습니다. 4.19때 대학 2학년이었으니 대통령이라면 다 겪었어요.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미군이라면 하나같이 꼼짝도 못합니다.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요. 가만 있을겁니까? 그래도 싸움은 해야지요. 문인들이 오셨으니 이 팽나무라도 지켜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