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세권'이란 말을 써가며 집 앞에 광교산 자랑을 한 지 두 주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광교산에 올랐다. 그동안 뭐가 바쁜지 바로 앞에 두고도 못 간 사이, 그렇게 도도하고 우아하게 피었던 철쭉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고, 초록의 짙어짐이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있었다.
대신 아까시나무 꽃이 진한 향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침 전날까지 비가 왔기에 공기는 맑았고, 갓 피어난 아까시나무 꽃의 꿀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 향기에 취해 숲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가장 좋아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숨어있는 작은 보물인 옹달샘의 도롱뇽 올챙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모퉁이를 돌자 옹달샘이 보였다. 그런데 '저 사람이 뭐 하는 거지?' 어떤 중년의 아주머니가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옹달샘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궁금함과 불길함을 다잡으며 아주머니에게 달려갔다.
"뭐 하세요?"
세상에, 기다란 막대기로 옹달샘 바닥을 사정없이 긁어내고 있었다. 이미 옹달샘 물은 뿌옇게 흐려져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너무나 놀랐지만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뭐 하시는 거에요?"
"물을 더 깊게 만들어주려고 바닥을 파고 있어요"
허걱이다. 굳이 왜?
"안돼요, 그러시면. 여긴 도롱뇽알과 올챙이가 살고 있어요"
아주머니는 격양된 나의 외침에 멈칫하며 막대질을 멈추었고, 의아하게 나를 쳐다봤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이 옹달샘은 약수터도 아니어서 사람들이 먹지 못해요. 하지만 도롱뇽이 살고 있고, 새들도 와서 먹고, 고라니도 찾아와 먹는 곳이에요."
아주머니가 헤집어 놓는 바람에 물은 넘쳐흘렀다. 그 물을 따라 도롱뇽알들이 여기저기 떠내려가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잡아 다시 옹달샘으로 넣어주었다. 그러나 이미 거친 막대질에 소시지처럼 길었던 도롱뇽알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도 찢긴 듯 너무 아팠다.
도롱뇽이 뭐예요?
그러나 "도롱뇽이 뭐예요?" 라며 천진하게 물어보는 아주머니한테 화를 낼 수 없었다.
"개구리처럼 양서류에요. 생긴 거는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더 동글동글 말랑말랑하게 생겼죠. 얘들은 보호받는 아이들이라 함부로 잡아가거나 해치면 안 됩니다. 벌금이 300만 원이에요."
상황에 따라 벌금은 천만 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불쑥 나온 삼백만 원이란 돈이 아주머니를 당황스럽게 했나 보다. 깜짝 놀라며 작은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몰랐어요. 그냥 샘이 좀 작길래 파주면 더 깊어질까 해서.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너무 사람 위주로 생각했네. 두 개밖에 안 했어요. 내가 그런 건 두 개뿐이에요."
그리고는 부리나케 숲길을 따라 가버리셨다. 옹달샘에 닥친 위기는 그렇게 멈췄다.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
이미 물을 따란 흘러간 알덩이를 두 개 넘게 주워 옮겨놓고, 혹시나 하며 돌 틈까지 다 뒤져 알들을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사이 물은 다시 고요해지고 깨끗해졌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알덩이가 열 개도 넘게 있었는데, 이제 제대로 모양을 갖춘 것은 두 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찢어진 알 덩어리들. 그 속에서도 몇몇 올챙이들이 살아남아 까닥까닥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물이 잠잠해지니 어디 숨었다가 나오는지 이미 알에서 깨어 제법 자란 올챙이들이 열댓 마리가 나왔다. '나 잘 있어요.' 라고 하듯이 말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꽃은 우리가 예뻐하라고 피지 않는다. 우리 보고 먹으라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사람도 동물이라고 말하면 크게 놀라며 부인한다. 사람이 어떻게 동물이냐며. '개나 고양이들이 동물이고, 사람은 동물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다' 라고 우긴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가장 우위에 두고 생각하는 게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쳐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사람이 그러면 무식하고 어리석은 거다. 우리가 맘대로 이용하라고 자연이 옆에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의 관점에서 세상의 돌아감을 바라보아야 한다.
신승희(협동조합 숲과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