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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여행은 그동안 두어 번 정도 해본 듯 합니다. 상족암 군립공원, 당항포 관광지 등 모두 공룡과 관련된 여행을 했습니다. 문득, 공룡 없는 고성 여행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불국사 없는 경주 여행, 하회마을 없는 안동 여행, 해운대 없는 부산 여행 같은 게 되려나요. 과연 앙꼬 없는 찐빵같은 여행이 될지는, 일단 해본 뒤에나 알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공룡 없는 고성 여행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고성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세워진 크고 작은 공룡 조형물이 저절로 눈에 띕니다. 버스 정류장 양쪽에도 귀여운 공룡 조형물이 장식돼 있고, '공룡나라쇼핑몰', '공룡수산', '공룡물고기', '공룡블루베리' 등등 곳곳의 상호에도 역시 '공룡'이란 글자가 자주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주차장에 세워둔 관광버스에 적힌 문구 또한 '공룡 고속 관광', '공룡 투어'입니다. '공룡발자국 화석지'라고 적힌 도로 위 관광지 안내판도 보입니다. 눈 두는 곳마다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거대한 그 친구의 이름입니다. 고성이란 문을 열자마자 "공룡의 세계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역시 공룡의 고장답게 말이죠.

해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해지개 해안 둘레길

숙소에 먼저 짐을 풀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숙소 바로 앞에 바다 위 해안 데크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천천히 걷자니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다지만 마치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평일에 간 터라 주말의 모습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세상만사 다 귀찮을 때 와서 쉬어가면 딱 좋겠단 생각이 들만큼 고즈넉한 마을에 있는 해지개 해안 둘레길이었습니다.
 
 해질 무렵 고성 해지개 해안둘레길
해질 무렵 고성 해지개 해안둘레길 ⓒ 배은설
 
 야경이 더 아름다운 경남 고성 해지개 해안 둘레길
야경이 더 아름다운 경남 고성 해지개 해안 둘레길 ⓒ 배은설

잠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데크길에 불이 켜졌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할 즈음이었는데, 사위는 어둑해졌지만 데크길 위는 조명등으로 밝혀져 또 다른 분위기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막 해가 지는 바다 위 풍경을 배경으로 잔잔한 파도 소리와 더불어 어디선가 종종 뻐꾸기 소리도 들려오던 길, 고성에서 처음 만난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이었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동화 마을 은하수길

여행을 하다 보니 고성 곳곳에는 더 많은 길이 놓여있었습니다. 이름도 예쁜 동화마을에 들어서자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져있는 알록달록 무지개돌이 먼저 눈에 띕니다. 나무 팻말을 봤더니 '소을비포 은하수길'이라 적혀있습니다.

소을비포가 뭔가 했더니, 동화 마을 한가운데에 소을비포 진성이라는 옛 성터가 남아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수군들이 전투를 위해 해안 벽에 쌓은 성곽이라고 하는데요. 옛 성곽을 따라 그 위를 걷자니 아기자기한 바닷가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까만 밤에는 은하수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니, 예쁜 무지갯빛 해안길과 옛 성곽 위를 따라 걷는 길과 반짝이는 밤하늘까지 품고 있는 마을입니다.
 
 소을비포진성 성곽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화마을 풍경
소을비포진성 성곽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화마을 풍경 ⓒ 배은설
   
순간의 시간 여행, 송학동 고분길

옛 성곽길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리자니 송학동 고분길 역시 함께 떠오릅니다. 짧디 짧은 역사 지식으로 인해 고분 하면 경주부터 떠올렸습니다. 아니더라고요. 보자마자 그 크기에 압도되는 고분들이 고성에 모여 있었습니다.

고성의 송학동 고분군은 소가야 최상위 계층의 무덤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당시 가장 높은 수준의 토목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고분군들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문득 바로 근처 도로 위로 차가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분군 너머 고성읍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마치 오래 전 과거의 장소와 현재의 장소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순간 들었습니다. 잠깐 동안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흥미로운 길이었습니다.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길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길 ⓒ 배은설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 배은설
 
작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숲길, 장산숲

숲길은 또 어떨까요. 고성 9경 중 8경에 속하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 86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 2009년 '제 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마을숲> 부문에서 아름다운 공존상 (우수상)을 수상한 곳. 바로 장산숲입니다.
 
 반영이 아름다운 장산숲
반영이 아름다운 장산숲 ⓒ 배은설
 
 정자로 가는 돌다리가 있는 장산숲
정자로 가는 돌다리가 있는 장산숲 ⓒ 배은설

사실 여행을 할 때 이런 수식들에 특별히 마음을 두는 편은 아닌데, 장산숲은 마주하자마자 단번에 납득이 될 만큼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비밀의 숲 같은 장산숲을 걷고 있자니,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옵니다. 곧이어 그 바람결에 스치는 수많은 나뭇잎 소리가 '쏴~' 하고 들려옵니다.

햇살이 다소 따가운 날이었지만, 푸릇푸릇한 잎사귀들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그늘이 되어준 덕분에 숲 안은 기분 좋은 청량함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햇살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비쳐 들어오자 땅 위로 햇살이 어른거려 숲길의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장산숲은 조선 태조 때 김해 허씨 문중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숲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길이가 1000m에 이를 만큼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현재의 작은 숲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아도 아름다움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곳입니다.

연못 위로는 이제 막 연꽃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었는데, 연꽃은 7월 중순쯤 활짝 피어난다고 하니 그때의 모습 또한 더 궁금해집니다.

시골마을 꽃밭, 월곡마을 꽃양귀비 꽃길

고성에는 꽃길도 숨어 있었습니다. 꽃양귀비가 있다는 월곡마을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도로 양옆으로 금계국인지 코스모스인지 모를 노오란 꽃들이 벌써부터 반겨주는 시골길을 달리다보니 어느덧 저수지 하나가 보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붉은 꽃양귀비 꽃밭이 활짝 펼쳐져 있었습니다.
 
 경남 고성 월곡마을 꽃양귀비 꽃밭
경남 고성 월곡마을 꽃양귀비 꽃밭 ⓒ 배은설
 
 아름다운 고성 월곡마을 풍경
아름다운 고성 월곡마을 풍경 ⓒ 배은설

그 풍경이 예뻐 잠깐 바라보고 있는 사이, 막 마을버스에서 내리신 인자한 어르신 한 분이 놀러왔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더니 덤덤히 당신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2020년 11월,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취지에서 고성군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꽃양귀비를 파종하고 꾸준히 관리해왔다고 하는데요. 잠깐 뵌 어르신의 손길도 담겨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양귀비꽃밭을 걷고 있자니, 꽃길도 예쁘지만 꽃길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는 건 꽃밭을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좌련 저수지와 푸릇푸릇한 산입니다. 좌련 저수지 위에도 작은 데크길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속 꽃길에 이어 데크길을 걷고 있자니 뻐꾸기소리도, 까마귀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햇살이 내리비치자 물속이 투명하게 비쳐 보입니다.

제가 앞서 세상만사 다 귀찮을 때 와서 쉬어가면 딱 좋겠단 생각이 들었단 말을 했던가요. 이곳이야말로 그런 생각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다채로운 길이 있는 곳, 고성

고성에서 공룡 대신 다양한 길을 만났습니다. 바닷길, 고분길, 숲길, 꽃길 등 다채로운 길을 걸었는데요, 회우랑길, 대독누리길, 옛담장길 등 아직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 많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걷기 좋은 계절이죠. 이 계절이 가기 전에 천천히 걸으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풍경, 하늘에 뜬 구름의 모양, 피부에 와 닿는 햇살의 촉감, 불어오는 바람, 걷다가 예기치 못하게 만난 빗길에서 나는 흙냄새 같은 걸 느끼며 꼭 한 번쯤 걸어보시길.

그 길이 고성 어느 한 곳의 길이어도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경남고성#고성여행#고성둘레길#고성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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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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