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하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아들 스캔들'에 발목을 잡혔다.
기시다 총리의 장남인 기시다 쇼타로 총리 정무비서관은 총리 공관에서 사적 모임을 즐긴 것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사직했다. 기시다 총리는 '주의'만 주고 넘어가려 했으나, 여론이 반발하자 입장을 바꿨다.
지난주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은 쇼타로 비서관이 작년 말 친척들을 공관으로 불러 송년회를 열었다고 전격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쇼타로 비서관은 친척 10여 명을 불러 모임을 가졌고,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에서 신임 각료의 기념 촬영을 따라하는 듯한 사진도 찍었다.
논란이 일자 기시다 총리는 야당의 경질 요구에도 엄중 주의를 주는 데 그쳤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이 2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쇼타로 비서관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무려 76%에 달하는 등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사직하기로 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30일 총리실은 쇼타로 비서관이 6월 1일 자로 사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의 여름 보너스가 6월 1일을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이를 받기 위해 사직 날짜를 정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쇼타로 비서관은 보너스에 퇴직금까지 모두 반납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회견에서 "쇼타로 비서관이 퇴직금과 보너스를 받으면 모두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라고 밝혔다.
지지율 꺾인 기시다... G7 정상회의 효과도 '물거품'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신문>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소폭 하락했다. 최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지지율 상승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총리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G7 정상회의 지지율 부양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라며 "정권에 대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쇼타로 비서관 경질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일본 정부와 여당에서는 쇼타로 비서관의 문제가 G7 정상회의 효과를 상쇄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쇼타로를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고, 당시에도 시대착오적인 '정치 세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앞서 쇼타로 비서관은 지난해 1월 기시다 총리의 유럽·북미 출장에 따라갔다가 관광 목적으로 관용차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총리실은 공적인 기념품 구매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권은 공세에 나섰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처음부터 공사를 혼동한 인사였고, 사직은 당연하다"라며 "국민에 대한 설명이나 사과도 부족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공산당 고이케 아키라 서기국장도 "기시다 총리가 직접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사과할 책임이 있다"라고 밝혔다.
야당·언론 비판 쏟아져... 기시다 "임명 책임은 나에게"
언론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친척을 공관으로 불러 파티를 즐긴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기시다 총리가 일련의 대응을 반성하고 옷깃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아사히신문>도 "작년 말이라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강행,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관계 등으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크게 부진했을 때"라며 "국민의 엄격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런 느슨한 행동을 했다고는 믿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총리를 뒷받침해야 할 비서관으로서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를 임명한 기시다 총리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라며 "올해 들어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회복세에 있고, G7 정상회의 성과도 내세우고 있으나 발밑을 직시하지 않고 겸손을 잃으면 민심도 순식간에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쇼타로 비서관의 행동은 부적절했고, 이를 매듭짓기 위해 경질하기로 했다"라며 "임명 책임은 나 자신에 있다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