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연수구엔 러시아어가 자주 보이는 곳이 있다. '함박마을'이라는 동네다. 이곳은 분리수거장부터 초등학교에 걸린 현수막까지 한글과 함께 러시아어가 적혀 있다. 함박마을엔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 우리 민족 동포 '고려인'이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우리 민족은 강제이주를 당했다. 17만 명의 고려인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에 거주하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가 바로 고려인이다. 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고국' 한국에 이주하고 있다.
2022년 인천시 통계에 따르면 함박마을엔 7000명 정도의 고려인이 거주한다. 수많은 고려인의 정착과 생활을 돕는 사람이 있다. 함박마을 '원고려인문화원'의 원장, 고려인 차이고리(46)씨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고려인을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우리 동포로 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뜨거운 애국심과 동포애를 가진 차이고리씨를 함박마을에서 지난 4월 19일 만났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
차이고리씨는 자신을 '연안 차씨(延安 車氏)'라고 소개했다. 차이고리는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본명으로 '차인호'라는 한국 이름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정책으로 8살에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나고 자랐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을 지칭하는 '카레이츠'라는 말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같은 국적임에도 고려인을 다른 존재로 바라봤다.
-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나요?
"어릴 때, 제빵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를 '고려놈'이라 부르며 방해하고 협박한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있었어요. 차별은 지금도 있습니다."
-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인가요?
"중학생일 때 학교에 있는 한국어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됐죠. 동아리 선생님에게 대한민국이 저의 조국이라고 배웠어요. 그 계기로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범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했습니다."
이 환경 속에서 차이고리 씨는 정체성을 돌아봤다. 스스로를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 한국인으로 받아들였다. 차이고리씨는 한국말을 배워 조국 대한민국에 귀향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협회에서도 활동했다.
1997년 대학생 차이고리씨는 한국에 처음 방문했다. 같은 민족동포 고려인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지원을 받아 경복궁, 경주 등의 명소를 탐방하며 대한민국을 보고 느꼈다.
20년의 시간이 흘러 2017년, 차이고리 씨는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가족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원고려인문화원 운영, 대한고려인협회 인천지부장 등 대한민국에 와서도 고려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원고려인문화원 원장
차이고리씨는 대한민국에 오기 전부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협회에서 한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교육하는 '애국애족(愛國愛族)'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이제 다수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함박마을에서 고려인의 생활과 정착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다.
- 함박마을에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려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여기 함박마을은 보증금이랑 월세가 비싸지 않아요. 물가도 다른 곳보다 괜찮고요. 그리고 동네에 고려인문화원이 있으니까 도움을 받고자 이곳에 많이 살고 있어요."
차이고리씨는 어려운 고려인을 돕고자 함박마을에서 원고려인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문화원에 오는 아이들은 30명 정도며 성인도 퇴근 후에 찾아온다. 문화원에서 교육을 하는 선생님은 고려인 6명이다.
- 문화원은 몇 시까지 운영하세요?
"보통 저녁 10시까지 해요. 어쩔 수 없어요. 공장에서 노동하는 고려인은 저녁 9시까지 근무하고 늦게 퇴근하거든요."
- 문화원에서는 어떤 교육을 하나요?
"아이들이 한글을 잘 몰라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문화원에서 러시아어로 다시 알려주고 이해를 도와주고 있죠. 소통을 잘 못하니까 한글을 알려주고 한국의 문화, 전통, 풍습도 가르쳐요. 우리나라 역사는 <명량>같은 영화로 교육해요. 요즘은 한국 영화가 러시아어 통역이 돼 있어서 아이들도 재밌게 보고 배울 수 있어요. 또 심리상담도 하고 태권도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고려인 문화원은 원불교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불교조계종, 천태종 등 불교계가 고려인을 돕는다. 이들은 인천에 거주하는 어려운 한부모 가정 고려인에게 쌀, 통조림, 세제와 같은 생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의 일환으로 고려인 아이들이 애국애족 교육을 받고 민속촌, 불국사 등 여러 대한민국 명소를 탐방하고 있다. 차이고리 씨는 고려인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마련해주는 불교 교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국에서의 고려인
- 한국 생활의 어려움은 없나요?
"언어만 알면 괜찮아요. 그런데 한국말과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몰라서 실수하는 고려인이 있어요. 한국에서 잘 지내려면 우리 언어를 배우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죠."
차이고리씨는 고려인에게 손가락질 하기보다 도움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의 어려움보다 '비자' 문제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한국에 오는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다른 구 소련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의 비자 발급이 다르다.
- 같은 고려인인데, 비자가 다른가요?
"러시아에서 오는 고려인은 누구나 'F-4비자', 동포 비자를 받아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오는 고려인은 'H-2비자'라는 취업 비자가 있어야 해요. 대한민국 대사관에 졸업장 같은 서류를 내지 않으면 비자 발급도 못하죠. 그리고 F-4비자는 외국 국적 동포라고 써있는 데, H-2비자는 외국인 등록증이라고 써 있어요. 고려인을 외국인으로 보는 거잖아요. 비자 문제는 우리 동포를 차별한다고 느껴져요."
"우리는 한민족"
차이고리씨는 문화도 잃고 본도 모르는 고려인에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췄다. 그는 고려인에게 '우리의 본(本)은 대한민국'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는 애국애족, 우리 역사교육에 사명감과 봉사정신을 갖고 있다.
- 역사와 애국애족을 많이 강조하시네요.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밝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고려인은 독립 운동가의 후손입니다. 연해주의 홍범도 장군, 안중근 의사... 우리가 잊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고려인에게 우리 역사를 많이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는 같은 민족, 같은 동포입니다."
그는 뜨거운 애국심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고려인을 위한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몇 년 째 원고려인문화원 원장으로서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신경을 쓴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방문 밖 태권도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 아이들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계시는 거 같아요.
"고려인 학부모들은 새벽 일찍 출근해서 밤에 퇴근해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그동안 돌봐주는 사람이 없죠. 그러면 아이들이 위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문화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돌보려고 해요. 안전을 위해 경찰도 많이 만나고 인천시장님께 편지까지 썼어요. 그래서 최근 여기 함박마을에도 작은 파출소가 생겼죠."
고려인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공부하는 한국인이다. 언어와 사고방식도 한국인과 똑같다. 차이고리씨는 고려인을 같은 한민족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며 앞으로의 고려인 인식 개선과 교육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정신이 밝은 참된 인재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요. 고려인 아이들이 장차 조국을 위한 애국자가 되고 인재가 될 수 있어요. 고려인이 지원을 받은 만큼 애국심을 지닌 아이들이 커서 우리나라를 위해 보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앞으로도 문화원을 운영하면서 역사와 한글을 가르쳐 고려인의 생활과 정착을 돕고 싶습니다. 이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차이고리 씨는 스스로 뿌리를 찾아 자신의 본국(本國) 대한민국으로 왔다. 이제는 그와 같은 고려인을 돕기 위해 매일 문화원으로 나선다. 사명감이 그의 원동력이다.
차이고리씨의 휴대전화에선 애국가 전화벨이 울린다. 문화원 교육실에는 큰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가 제작한 우리나라 갑옷과 칼 소품도 보인다. 차이고리씨는 영웅처럼 갑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적이 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함박마을엔 우리 민족 고려인 '동네 영웅' 차이고리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