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부여를 방문해 가루쌀 모내기에 참여했다. 같은 시간 충남지역 농민 30여 명은 윤 대통령이 지나는 길목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가루쌀은 쌀값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수입쌀 중단과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이어 윤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이 지나가자 일제히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농민들은 윤 대통령 취임 일 년 만에 왜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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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입하며 자급률 높이겠다? 모순'
"농민의 적정한 소득 보전은 쌀의 안정적 수급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양곡관리법상 기준으로 시장격리 요건은 충족된 상태다. 늦추고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내놓은 발언이다. 양곡관리법은 '쌀 등 양곡의 배급과 소비를 통제해 수급 조절과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재정됐다. 지난 1950년 제정돼 여러 차례 손질을 거쳤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쌀이 부족하면 양곡관리법을 근거로 외국에서 수입했다. 생산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에서 일정량을 사들였다. 하지만 정부가 사 들이는 건 법적 의무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연말에 오줌 누는 식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쌀값이 폭락했다. 윤 대통령 취임 당시 4만 5423원(백미 20kg)이던 쌀값은 지난 4월 기준 4만 4415원으로 떨어졌다. 쌀 값이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했다는 원성이 이어졌다. 후
보 시절부터 '농민의 적정한 소득 보전은 쌀의 안정적 수급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해 온 윤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자동 시장격리가 발동'되도록 했다.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개정된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 국가 식량안보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부는 쌀 매입이 의무화되면 과잉 생산이 굳어지고 농가들이 손쉬운 벼농사를 고집해 다른 작물 전환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쌀 의무 격리에 따른 1조 원 이상의 세금 부담 증가도 반대 이유 중 하나였다.
농민들은 지난해 기준 쌀 자급률은 82.2%인데도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남는 쌀 강제수매법'으로 호도했다고 반박했다. 또 매년 쌀 수입량이 전체 소비량의 12%에 달한다며 정부가 쌀 수입을 하면서 쌀 자급률을 98%까지 올리겠다는 발표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농민에 대한 그릇된 여론몰이 중단하라"
지난 3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쌀의 시장격리 요건을 '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경우'로 수정해 통과시켰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첫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국회로 되돌아온 법률안은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확정된다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 폐기됐다.
7일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은 "쌀값 하락의 본질은 농민들의 과도한 쌀 생산이 아닌 제대로 된 양곡 정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쌀값 하락의 보다 근본 원인으로 쌀 수입을 꼽았다.
진보당 충남도당도 이날 논평에서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은 '쌀 자체의 과잉생산'이 아니라 '무조건 쌀 수입' 때문"이라며 "정부에서는 매년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40만 8700톤의 외국 쌀을 국내로 들여오고 있고, 수입쌀은 국내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지난 4월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매년 1조 원 이상 과다한 정책 비용이 소요된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과다 추정된 자료를 근거로 산출한 거품 비용"이라고 주장하며 "농민과 국민에 대한 그릇된 여론몰이를 중단하라"고 말했다.
가루쌀 증산정책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가루쌀은 정부가 쌀 과잉 생산 문제 해결과 밀을 대체하기 위해 쌀가루 전용으로 개발한 밀과 성질이 비슷한 신품종이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가루쌀 생산량을 20만t으로 늘려 연간 밀가루 수요 10%를 대체하겠다며 가루 쌀 보급을 농정 역점사업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이날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은 "가루쌀은 유통기간이 짧고 반죽 찢어짐 등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6월 의뢰한 가공 적합성 평가에서 이미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며 "가루쌀은 쌀 가격 폭락의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쌀의 안정적 수급 외에도 ▲농업직불금 예산 5조 원 ▲비료가격 인상차액 지원 ▲농촌 마을주치의제 도입 ▲농축산물 유통비용 절감 등의 공약을 내놓았다.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은 "비료 가격안정 지원 예산이 삭감되는 등 공약 후퇴와 불이행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말 식량 안보와 농가 소득 안정을 꾀하려한다면 양곡관리법 전면개정과 쌀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