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나는 최근 들려온 '사회보장 서비스의 시장화와 산업화'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자신이 주재한 '사회보장전략회의' 자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 되고 시장화되면서 이것이 산업화된다고 하면, 이것 자체도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또 팩터가 된다"라며 "(복지 서비스를)합리적으로 통폐합해서 시장 조성을 좀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보장 서비스나 복지사업이 난립하고 있어 이걸 시장화 시키고 경쟁시켜 생산성과 질을 높이려고 해도 도대체 경쟁이 되겠냐"면서 "통폐합을 해서 시장 조성을 제대로 해야 한다. 또 돈을 나눠주는 것은 사회적 최약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말 대로면, '사느냐 죽느냐'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람들의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마저 시장 경쟁 속에 놓일 지경이다.
이는 이번 정권의 120대 국정과제 중 44번에 언급된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복지부)'의 과제 목표인 "다양한 공급주체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누구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돌봄체계로 사회서비스를 혁신"이라는 내용과도 상반된다.
"정말 힘든데, 아무 혜택 못 받는 사람 많은데... 어쩌면 좋아"
사회복지는 빈민을 구제하면서 시작됐다. 멀게는 삼국시대 구휼사업을 중심으로 병들고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내어주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던 것이 사회복지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미래로 갈수록 더 좋아져야 할 복지가 어쩐지 급속도로 퇴행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사회복지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우려를 표했다. 한 복지관 관장은 "사회복지가 시장화, 산업화와 시장 경쟁하고, 보편복지가 아닌 선별복지로 간다면 못 사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잘 사는 사람이 혜택을 많이 받게 된다"라며 "사회복지 수혜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해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네에서 통장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은 "구역을 돌아다니면 정말 힘든데도 아무런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좋아"라며 힘든 사람은 더 힘들어지겠다고 걱정했다.
코로나19로 복지관에서 점심식사 대신 도시락을 나눠주던 때의 일이다. 매일 점심 한 끼는 복지관에서 받아오는 도시락으로 해결하던 어르신 댁에 방문했는데, 도시락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 오늘은 도시락 받으러 안 가셨어요?"
"아니, 갔다 왔어. 아래층에 사는 사람 줬어. 그 집은 도시락 주면 점심이랑 저녁 두 끼를 먹어. 아들이 아파서 일도 못하고 있는데 아들한테는 도시락도 안 나와. 내 거라도 가져다줘야지 안 그러면 (아래층 사람은) 굶을 때도 많아."
어르신은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받아다가 아래층에 사는 친구한테 주기 위해 다리가 아파도 실버카트를 밀고 매일 11시가 되면 복지관 앞으로 나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래층에 사는 어르신의 아들은 도시락마저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다른 한 분은 65세 이상 노인이 받을 수 있는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 대상자에서 탈락했다. 치매를 앓고 있고 아들이 이혼하면서 두고 간 손자를 키우고 있지만,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기에 대상자가 아니란다. 어르신은 겨울에 빙판길에 넘어져서 허리를 다쳐 옴짝달싹 못하고 겨우 거동만 하는 정도인데도 손자 밥을 해 먹여서 학교에 보내야 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공무원이었다고 나는 혜택을 못 받는다고 혀. 남편 죽은 지가 벌써 한참 됐는데. 남편 죽고 나니까 연금도 반절밖에 안 나와서 먹고살기도 힘들어."
사회복지의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점에 걸려 혜택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안타까운 사례는 많아도 너무 많다.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있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송파 세 모녀와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통령은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화해 경쟁을 시키면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장에 있는 당사자로선 의구심이 드는 발언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의 특성상 경쟁은 오히려 서비스의 질을 낮출 수도 있는데, 그런 우려는 정말 없는 것일까? 대통령은 현금급여를 현물이나 바우처 서비스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물건이 필요할까? 각자 처지와 상황이 다름에도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물건을 지급한다면, 그것이 과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복지는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사회복지서비스가 기성복처럼 쏟아져 나오거나, 이용자가 많고 지역 예산이 풍족한 대도시에 편중된다면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고 사람이 많지 않아 수요가 적은 곳에서의 서비스는 어떻게 될까.
사람의 출발점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정부가, 사회가 할 일이 복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삶을 살아감에 있어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라도, 어려운 이들이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갈 방법을 찾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사회복지의 존재 이유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면, 국민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는 빼앗지도 해치지도 말아야 한다. 적어도 있는 사람들의, 있는 사람을 위한, 있는 사람에 의한 사회복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