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편집자말] |
처음 인사를 드리고 며칠 뒤 다시 사부댁에 들렀을 때였다. 첫날 사부의 숙제였던 정원 평면도를 그리기 위해 정원 사진이 필요했었다. "매일 와서 정원을 보고 싶지만 오야가타(親方 사부의 일본어 표현)께 폐가 될 것 같아서..."라고 하니 "폐가 돼!" 하신다. 짧고 분명한 대답이었다.
이건 일본 사람의 어법이 아니었다. 상대방 면전에 대고 폐가 된다고? 10년 가까이 일본을 드나들었어도 이렇게 불량한 대답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속엣마음을 감추고 돌려 말하는 게 일본식 어법이다. 순간 당황했다. 내가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아실텐데... 이 양반이 억지로 떠맡게 돼서 나를 싫어하시는 건가?
의심의 증거들
사실, 이 양반 바쁘시다. 80을 목전에 둔 나이에도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바쁜 중에도 거절할 수 없는 지인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이국의 '쌩초짜'를 제자로 떠맡게 된 거다. 그러니 싫을 수 있다. 평생 눈치로 살아야 하는 조직에서 30년 씩이나 버텨 낸 인간이 그걸 모르랴.
의심의 여지는 또 있었다. 공부는 네가 하는 것이니 우선 질문 거리를 찾아 물어야 한다는 게 사부의 교육 방침이었다. 아는 게 없으니 질문이 짧은데 비해 대답은 자세하고 길었다. 정원 전문용어를 이해하기도 바빴다. 이상하고 불친절한 교육이었다.
질답 형식으로 한 시간씩 수업이 진행됐다. 말씀을 다 따라 적을 수가 없으니 녹음을 하고 뒤에 따로 정리하겠다고 하자 그건 허락했다(녹음 자료를 문서로 정리하는데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수업이 없는 동안 읽을 책을 한 권 소개해 달라고 하자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나한테 수업을 받고 있지만 공부는 네 공부니까, 여러가지 책을 읽어보고 네가 스스로 고르라는 것이다. 내가 소개해주면 거기에 의존하게 되므로 그건 네 공부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사부가 나를 싫어 하시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원래 성격이 그러하신 분으로... 차차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해야지 어쩌겠나.
이 길은 내가 하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외줄 아닌가. 외줄에 올라선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줄에서 뛰어 내리거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앞을 향해 조심조심 한 걸음씩 내딛거나.
정원 있는 집들
교육이 없는 시간들은 카메라를 들고 동네 호구조사를 다녔다. 개인정원 자료사진도 사부의 숙제였다. 자료가 될 만한 정원을 발견하면 카메라를 들이댔다. 초인종을 눌러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이겠으나, 그렇게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다.
물론 사진을 찍다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신경 안 쓰고 자기 일을 한다. 드물게 뭔 놈인가 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때도 있다. 정원을 찍고 있다고 설명하면 '아~' 하며 금세 얼굴이 밝아진다.
이 사람들은 사진에 관한 한 매우 열려 있다. 전에 마츠리(축제)같은 데서 현장 스케치용으로 슬쩍 카메라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새 알아차리고 V사인을 보여주는 바람에 놀란 적이 많다. 이들은 어디서든 사진 찍는 거라면 오케이 땡큐다. 적어도 여기서는 사진으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게 내 확고한 판단이다.
돌아다녀 보니 정원 없는 집이 없다. 천막을 치고 살아도 정원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사람들이다. 규모나 디자인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어느 집이든 반드시 정원이 있었다. 느낌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들에게 집이 얼굴이라면 정원은 표정 같은 것이다. 얼굴 생김새가 가지각색이듯 표정도 제각각이다.
기와를 얹은 이층집일수록 위압적인 물량 공세가 많았다. 키 큰 마키나무를 밤톨얹어놓은 듯 다듬어(전문용어로 다마치라시, 구슬뿌리기다) 일열로 세우고 덩치 큰 모치노기(돈나무)를 두어 군데 배치한다. 전체적으로 상록수가 주종을 이뤄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가 된다. 기와를 얹은 옛날 건물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
대개 일년에 한두 번 사람을 사서 정원을 관리하는 집이리라. 그저 체면 치레용이라 할까. 주인의 손길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와~' 하는 감탄사는 나올지 모르지만 그다지 마음을 끌지는 못한다. 오히려 위화감이 뒤끝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개인적 느낌이다.
사실 정원이란 게 자기가 보고 즐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남에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태생부터 과시의 도구로 남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거다. 주택이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듯.
물량공세이긴 하나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담긴 곳도 있었다. 구루메 시가지 초입의 하시모토라는 문패가 달린 정원이었다. 정원도 넓었고 넓은 만큼 나무도 많았다. 집이 현대식이어서 그런지 정원수가 대개 활엽수였다.
정원이 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길 닿는 곳마다 주인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져 감동이었다. 쿠사노에서 구루메까지 장장 14키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수십 곳을 돌아다녀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돈 들인 집=위압감'의 공식을 깬 훌륭한 사례였다.
마음을 사로잡은 정원
며칠 전 만났던 정원설계가 요시다씨가 말했던 활엽수 유행이 떠올랐다. 가옥구조가 현대식으로 바뀌는 것과 맞물려 어둡고 무거운 정원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국의 초짜 정원사 눈에도 확연히 변화가 보이는데 이들이라고 생각이 다르겠는가.
물론 사부의 정원과는 다른 용도였다. 사부 정원은 액자 속 그림처럼 철저하게 감상용이다. 삼겹살 구워 먹을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두 곳의 공통점은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주로 마음을 끄는 건 크기에 관계없이 정성이 담겨있는 정원이었다.
가장 마음을 끌었던 풍경이 하나 있었다. 낡은 슬레이트 주택이었는데 집 옆에 오래된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단지 감나무 한 그루였다. 오랜 기억의 저편 초가집 옆에 감나무 한 그루가 오버랩됐던가. 오래 눈길을 잡았다. 기억은 사물을 통해 보존되는 법 아니던가.
세 번째 수업 때 사부가 동네를 둘러 본 느낌을 물었다. 느낀 대로 마음을 잡는 정원은 주인의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고 대답했다. 잘 봤단다. 정원수가 이건 천 만 원짜리고 저건 몇 백 만 원짜리라고 자랑이나 하는 것들은 정원이 아니라 하타께(밭)이라고 일갈하시던 말씀이 깊게 남는다.
1차 일정 중 계획 돼 있던 세 차례 사부 수업이 끝났다. 5월 말에 소나무 손질할 때 쯤 다시 부르겠다고 하셨다. 수업은 계절별 정원수의 관리 사이클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했다.
* 일본정원사 입문기 4~6화는 사부를 만나게 된 정황과 1차 수업 일정을 회상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내용상 다음 7화는 이전 기사인 3화
물까지 뿌려놓은 정원엔 금족령이 내려졌다 https://omn.kr/24a40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