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세종 정신으로 공공언어 바로잡기 운동을 펴고 있는 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우리 시대 <우리말글 가꿈이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공공언어 바로잡기에 애써온 단체와 우리말글 운동가들을 찾아 성과와 의미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말] |
미국 뉴욕에서 평생 공공학교 과학교사로 있으면서 한글학교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말글 지킴이로 활동해 온 김은주씨가 정년 퇴임을 하고 지난 3, 4월 두 달간 10여 년 만에 모국을 방문했다.
바쁜 와중에도 3월 19일 한글학회 총회와 3월 23일 외솔 최현배 53주기 추도식에도 함께해 그의 우리 말글 사랑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인터뷰를 했고 최근 줌 회의와 카톡으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한때 영어가 모국어보다 더 자연스럽고 유창했던 그가 왜 한말글(한글과 한말의 합성어) 운동가가 되었는지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모국어 찾았을 때의 기쁨... 이후 활동에 큰 영향
- 미국의 과학 교사로서 한말글 운동가가 된 계기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10살 때인 1975년 무렵, 경제 이민을 간 부모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뉴욕에서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런 환경으로 인해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던 만큼 모국어를 쉽게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부모님께서 일터에 가시는 동안 저는 동생들과 텔레비전 보면서 영어를 익혔어요. 부모님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지요.
대학에 가서야 모국어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 저는 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했어요. 유학생들 중심으로 동아리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그곳에서 유학생들과 자주 대화하고 토론하며 그들을 돕다 보니 우리말을 다시 빨리 배울 수 있었어요. 모국어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운동의 강력한 힘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1982년 즈음 학생들과 IBM 다니던 동포 기술자들, 의사들이 중심되어 한국교회가 설립되었어요. 한글학교에서 한인 아이들을 입양한 외국인과 미군들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한국 여자의 자녀들을 모집했어요. 이 한글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서 우리말글 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10년 전쯤 페이스북에서 한글 운동의 대부인 이대로 선생님 활동을 보면서 더욱 힘차게 한말글 시민운동을 하게 된 것이죠."
김은주씨는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빙햄톤 한글학교에서 주로 입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뉴욕 한인 교사회 회장으로 한국어가 공립학교나 대학에 정식 과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직접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노력했다고 한다.
2011년도엔 50명의 외국 교육자를 한국으로 모시고 와 한국어진흥재단 주최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미주 내 시골 및 도시 공립/사립 학교에서 정규 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많은 학교가 한글과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뉴욕 한국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그의 제자인 황지원양이 김구일지 감상문 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 한글학교에서 오래 봉사를 하셨는데 보람있었던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미국의 한글학교는 발전할 때도 있고 때로는 뒷걸음질 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비한국인이 한류 바람을 타고 우리 말과 글을 많이 배우고 있는 점이 큰 특징이지요. 그리고 2, 3세 한인계(Korean Diaspora) 아이들이 부모/조상의 말을 배워야 한다는 중요성을 느끼면서 한국말을 많이 배우려고 해요.
그들이 커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조상어(모국어)를 못하면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한인 2, 3세 아이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인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와 결혼해도 모국어를 한국어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의외로 혼혈 한국계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국말을 배우려고 많이 애쓰고도 있어요.
반면에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일부 종교 집단들이 한글학교 활동과 수업을 극우 정치사업과 연결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부분은 동포 사회를 분열시키는 반인권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한글학교가 후원되지 않아 재정 문제 또는 교사 부족으로 문을 닫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한글 학교끼리의 경쟁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있어요. 한글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닌 대부분 주말 학교 형태로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서 아쉬워요. 일본, 그리스, 이스라엘 등은 정규학교로 만들어 잘 운영하고 있어 대조됩니다."
- 한국어와 영어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느끼는 모국어와 영어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정서적, 감성적인 표현이나 사랑을 속삭일 때는 우리말이 최고지요. 형용사가 풍부하고 흉내말이 기가 막히게 발달해 우리말로 소통을 적절하게 잘 표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말로 색을 표현할 때 빨간색, 붉은색, 파릇파릇한 파란색, 보랏빛 마음 등 무궁무진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찌개가 부글부글, 햇볕이 쨍쨍. 개굴개굴, 엉금엉금, 뒤퉁뒤퉁, 얼굴이 화끈화끈, 마음이 뒤숭생숭, 등등의 흉내말이 매우 재미있고, 직감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고 듣기 편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영어는 목적이 뚜렷한 언어지요. 물론 영어도 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감정이나 감수성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국어보다 부족한 언어지요. 똑같이 우리말로 표현하려면 설명이 많이 필요한데 영어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이유로 어떤 결과를 냈나, 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편리합니다. 어떤 언어가 우수하냐를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각 언어의 맥락이 다른데 마구 섞어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 한국을 방문해 여기저기 다녀 보니 어떤가요? 한국 사회에서 영어 섞어 쓰기가 날로 심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명동이나 종로 같은 번화가에 가보면 뉴욕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이에요. 한국어로 '힘내라! 잘해보자'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대부분 '화이팅'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FIGHTING'의 일본어 발음을 따라 하면서까지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있을 때 잘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지켜야 합니다. 일본식 발음뿐만 아니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영어 사용도 잘못된 것들이 많습니다.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어린 학생들이 영어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언어와 영어를 섞지 않게 잘 구사하며 사용하는 것을 인상 깊게 지켜본 적이 있어요.
반면 한국인들은 모국어인 한국어와 엉뚱한 외국어를 섞어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일제 식민지에 이어 미국의 영향권에서도 언어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50년 정도 지나면 사용하는 한국어가 완전히 '뒤죽박죽' 외계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말과 언어를 존중하는 것은 민족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라는 그는 우리말 지키기 운동은 바로 우리 얼과 우리 자존감, 우리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운동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근본을 중요하게 여기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늘 초심을 잃지 말고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늘 깨어있고 좋은 음식 먹고 글 쓰고 읽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순간 살아야겠어요"라고 말하는 김은주씨의 표정은 해맑은 소녀 같지만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민족운동, 인권운동도 치열하게 하는 그에게 살짝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한다.
"제가 시민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은 제가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고 또 본을 보여야 합니다. 지식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은주씨는 현재 불교 계통의 한글학교인 뉴욕 원광 한글학교, 뉴욕 불광사 한글학교 등에서 행사를 위주로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 한글학교에 와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 등 온몸으로 체험하는 활동 중심의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글학교가 한국어 표준 프로그램이나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기보다 아이들 상황에 맞게 한국어와 문화, 역사 등을 융합한 특별 교재로 지도한다고 한다. 주로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모둠별로 부모님들과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한글학교 다니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한다.